[중앙로365] 이제 아세안 중심 글로벌 공급망 구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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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인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

“한 바구니에 계란을 다 담지 말라”는 증권가의 명언은 이제 우리나라 기업의 공급망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부품을 제때 납품받지 못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 라인을 멈추는 일이 있었다.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바이러스 사태로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중국에 쏠린 공급망을 분산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더 커졌다. 우리 정부가 역점 추진 중인 신남방정책의 목적지인 아세안이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특정 국가로 과도하게 쏠린 글로벌 공급망의 위험성을 여러 차례 경험하고 목도했다. 2003년 사스 사태 때가 그랬고, 2011년 동일본 쓰나미 사태 때가 그랬다. 문제는 공급망 교란이 이런 자연·사회적 재난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갈등에서도 비롯된다는 점이다. 2005년 일본 교과서 문제로 발생한 중국 내 일본 상품 불매 운동, 작년 일본의 일부 소재에 대한 한국 규제가 그 사례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中 공급망 끊겨
한국 자동차 공장 중단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분산 필요 절감

중국과 베트남 집중 생산 시설
印尼, 필리핀 등으로 이전하면
진정한 의미의 상생 번영 가능

보다 근본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의 황금기가 서서히 내리막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년간 유지되며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세계화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작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세계화의 둔화’가 글로벌 공급망의 대변혁을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다국적 기업들은 생산비가 싼 곳을 좇아 생산 시설을 놓던 데서, ‘지역화’로 선회하고 있다고 이 주간지는 진단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시장과 가까운 곳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앞서가고 있다. 이미 2005년 중국 내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계기로 ‘중국 플러스 1’ 정책을 세웠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되,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로 생산시설을 하나씩 옮기거나 추가로 구축했다. 또 2011년 태국 홍수 사태로 태국 중심의 공급망이 차질을 빚자, 라오스 등 인근 메콩 국가로 이전하거나 추가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태국 플러스 1’ 정책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공급망을 다변화한 덕분에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일본 내 자동차 회사들이 중국산 부품을 받지 못해 조업을 중단했다는 뉴스는 없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피터 나바로 미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 담당 대통령 보좌관은 중국 중심의 미국 기업 생산시설을 미국 국내로 다시 가져와야 한다는 ‘리쇼오링(reshoring)’을 강조했다.

우리도 이러한 공급망 변화와 주요 다국적 기업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면서 세계 경제 흐름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리스크 분산 전략 수립에 우리 기업들이 더욱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과거에는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비용, 적기 생산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해 왔으나, 이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스마트 공장 도입 등을 통한 리쇼오링, 그를 통한 공급선의 변화, 추가 생산시설 마련, 재고 확대 노력 등이 그 예가 되겠다.

리쇼오링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스마트 공장을 구축하고, 소재·부품 등 특정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고리 중 부가가치가 높은 중간재 분야를 국내로 이전하는 것이 핵심이다. 중소기업벤처부가 올해 연두 보고에서 스마트 공장 도입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언급한 점도 우리 기업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생산 시설을 이전하는 방식을 뛰어넘는 전략 마련도 절실하다. 이제 베트남 중심의 부품 및 완제품 생산 및 공급망을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등 다른 아세안국가로 확장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태국 플러스 1’ 정책이 태국 중심의 정책이었다면, 우리는 베트남 중심의 ‘베트남 플러스 1’ 전략을 구사해야 할 때라고 풀이된다. 베트남에 7000여 곳 이상의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승산은 충분한 것으로 생각된다.

‘베트남 플러스 1’ 성공에 필요한 건 아세안 각국의 다양한 발전 단계와 그들이 가진 비교 우위에 대한 이해이다. 이를 바탕으로 대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들뿐만 아니라 현지 부품 기업들을 육성하고 한국과 아세안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을 만들어 간다면 진정한 의미의 상생·번영을 이룰 수 있다. 더 튼튼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건 당연한 결과이다. 아세안이 중·일과 달리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복잡한 과거사 문제나 서로 다툴 영토 문제가 없어서다. 아세안 각국이 한국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점도 매력이다. 글로벌 공급망은 태생적으로 이해관계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위에 ‘우호’를 얹는다면 더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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