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예 거부하면 살해 협박, 더 잔인해진 현대판 인신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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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악마의 삶을 멈추게 해 줘서 감사드린다.”

구속된 텔레그램 음란 단체채팅방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25)은 25일 이 같은 말을 남기고 검찰로 넘겨졌다.

‘박사방’을 비롯해 이른바 ‘n번방 사건’은 범인의 신상정보 공개와 처벌을 원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역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처럼 전국민의 공분을 사는 건 ‘n번방 사건’이 음란 행위 강요를 넘어 인간성 자체를 말살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스폰서 해 주겠다며 여성에 접근
스마트폰 해킹해 신상정보 캐내
가족·지인 전화번호 쥐고 위협
몸에 글 새기게 하는 등 엽기행각
단순 야동 넘어 인간성 말살 범죄
암호화폐 거래 점조직 형태 운영


조 씨는 ‘스폰서를 해 주겠다’면서 여성들에게 접근한 뒤 이들의 스마트폰을 해킹해 신상 정보를 빼냈다. 이 신상정보는 조 씨에게 든든한 협박 수단이 됐다. 조 씨는 ‘박사’라는 온라인 가명 뒤에 숨어 피해자의 가족과 지인의 전화번호와 신상정보를 쥐고 살해 위협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조 씨에게 굴복한 상대는 ‘노예’라고 불리며 암호화폐 등으로 요금을 결제한 유료회원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했다. 피해 여성들은 몸에 글씨를 새기거나 성기에 벌레를 삽입하는 등 이들로부터 집요하게 가학 행위를 강요당했다. 숙박업소에 감금당해 강간당하는 장면이 중계된 여성도 있었다. 몇 달간 ‘박사’의 협박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여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의 ‘박사방’ 범행은 1980년대 이후 사라졌던 인신매매를 온라인에서 재현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경찰은 텔레그램 음란 단톡방은 ‘갓갓’이란 가명의 인물이 만든 ‘n번방’이 발단으로 보고 있다. 2019년 초부터 텔레그램에서는 ‘여교사 방’ ‘여군 방’ ‘여고생 방’ 등의 이름으로 음란 단톡방이 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갓갓’이 이중 1번 방, 2번 방 등으로 여러 개의 단톡방을 운영하는 바람에 통칭 ‘n번방’으로 불리고 있다. 음란물 신고가 이루어져도 끊임없이 새로운 n번방이 개설되며 성 착취 자료가 옮겨졌고, 피해 여성은 여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경찰은 지난해 ‘갓갓’에게서 ‘n번방’의 운영을 넘겨받은 ‘와치맨’ 전 모(38) 씨를 검거해 구속했다. 그리고 행적을 감춘 ‘갓갓’의 IP 등을 추적해 신원 확보에 나섰다.

‘박사방’은 철저하게 점조직 형태로 운영됐다. 경찰 수사결과, 공범 중 1명이 경남 거제시청의 8급 공무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거제시조차도 지난해 구속된 이 공무원이 박사방 관련 피의자였던 사실을 모를 정도였다.


한편, ‘n번방’의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검찰은 사건을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 배당하고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접수돼 처리했거나 수사 또는 공판 중인 아동·청소년의 이용 음란물 제작·배포 등 사건을 재분석한다는 게 검찰의 방침이다.

아울러 서울중앙지검도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n번방’ 사건의 정보 공개 범위를 논의한다. 법무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시행 중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 정’에 따라 수사가 진행되어도 피의자 인적사항을 비롯해 범행 내용과 진술 등 형사사건에 관한 정보를 원칙적으로 공개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미온적 대응을 반성한다”면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범죄에 가담한 가해자 전원을 끝까지 추적해 엄중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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