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853 > 아쉬워라 표준사전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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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얼마 전에 이 난에서, 보온병을 ‘마호병’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이 마호병은 ‘마법병(魔法甁·まほうびん(마호우빙))’의 일본어식 표기이니 ‘알고 쓰시라’ 했더니 어느 독자가 항의를 하셨다. “일본어식 표기라면 쓰지 말라고 해야지, 왜 ‘써라’고 하느냐”는 것. 전화를 받으면서도 속이 쓰렸다. 이 난을 꾸준히 지켜본 독자라면 ‘쓰지 말라’고 하지 못하는 심정을 충분히 아실 테지만…. 사연인즉 이렇다.

*마호병(魔法甁)→보온병(국립국어연구원 <국어 순화 자료집>, 1991년)

*마호병(魔法甁, まほうびん)→보온병(문화체육부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집>, 1995년)

*마호병(魔法甁, まほうびん)→보온병(국립국어원 <일본어투 용어 순화 자료집>, 2005년)

보다시피 국립국어원은 일관되게 마호병을 보온병으로 순화해 쓰라고 했다.(국립국어연구원은 국립국어원의 전신, 문화체육부는 국립국어원의 상급 기관.)

1999년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에서도 이렇게 처리했다.

*마호병((일)maho[魔法]甁): 물 따위를 넣어서 보온이나 보냉이 가능하게 만든 병. ‘보온병’으로 순화.

한데, 이랬던 국립국어원이 나중에 표준사전 뜻풀이를 이렇게 바꿨다.

*마호병(maho[魔法]甁): 물 따위를 넣어서 보온이나 보냉이 가능하게 만든 병. =마법병.

일본말에서 왔다는 정보도 없애고, 보온병으로 순화하라는 말도 삭제해 버린 것. 이런 까닭에, “마호병을 쓰지 말라”고 하지 못하고, “알고나 쓰시라”고 한 것이다.(저 뜻풀이 가운데 ‘보냉’도 ‘보랭’의 잘못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례가 마호병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 표준사전을 보자.

*기라성(綺羅星):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이라는 뜻으로, 신분이 높거나 권력이나 명예 따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앙꼬(anko): ①떡이나 빵의 안에 든 팥. ②다이너마이트를 남폿구멍에 넣고 난 다음 그 둘레에 다져 넣는 진흙 따위의 물질.

*찌찌(←chichi[乳]): 어린아이의 말로, ‘젖’을 이르는 말.

기라성은 ‘빛나는 별’, 앙꼬①은 ‘팥소’, 찌찌는 ‘젖’으로 순화하라던 국립국어원이 표준사전에는 저렇게 올림말(표제어)로 실어 놓은 것. 뭐, 이렇게 할 거라면, 아래 말들은 왜 굳이 순화하라고 하는지 묻고 싶다.

*다마네기(tamanegi[玉총]): →양파.

*다쿠앙(←takuan[澤庵]): →단무지.

*사시미(sashimi[刺身]): →생선회.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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