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동물원 하나 못 지켜낸 국제관광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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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사회부 중부산팀장

어린이날이 일주일 앞이다. 지난 주말 문을 닫은 부산 유일의 동물원 ‘더파크’는 지금도 운영 주체를 찾지 못해 표류하고 있다. 어린이날에 아이를 데리고 찾아갈 동물원 하나 없는 초라한 ‘국제관광도시’라니 참담할 따름이다.

‘더파크’의 폐업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2014년 개장한 ‘더파크’는 무려 10년 만에 부산에서 문을 연 동물원이었다. 그러나 공사 중 시행사가 떨어져 나가고, 수백억 원대 채무에 시달렸다. 부산시가 부랴부랴 삼정기업과 2012년 정상화 협약을 맺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공사하러 들어온 향토기업에게 연대보증까지 서게 하며 6년간 동물원 운영을 떠넘긴 것이다. 대신 운영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게 부산시의 약속이었다.

기대 속에 출발했지만 ‘더파크’의 운영 실적은 초라했다. 부산발전연구원은 ‘동물원 설립타당성조사’ 보고서에서 350만 명이 동물원을 찾아 700억 원의 수익을 낼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미 테마파크와 연계된 ‘에버랜드’ 등 초대형 동물원에 눈높이가 맞춰진 가족 단위 관람객에게 ‘더파크’의 콘텐츠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연간 방문객 수는 34만 명 수준에 그쳤다. 적자의 늪 속 빠진 삼정기업이 운영을 맡은 지 1년 만에 두 손을 들 정도였다.

부산시는 삼정기업을 달래 도합 6년 간의 ‘더파크’의 운영을 맡겼다. 그렇다면 그때부터 부산시는 의무매수 기한인 2020년 4월 폐원을 막기 위한 ‘플랜B’도 마련했어야 했다. 억지로 운영을 떠맡은 기업이 의무매수 기한이 도래하자 돌연 마음을 바꿔 동물원을 더 맡아보겠다고 팔을 걷을 리가 없지 않은가.

부산시는 대안 없이 의무매수 기한을 맞았고, 결론은 운영사의 폐업 선언이었다. 동물원이 문 닫은 지 사흘째가 된 오늘까지도 부산시는 감감무소식이다. 직접 인수를 하겠다는 결단을 내리지도, 인수를 해줄 제3자를 구하지도 못하고 있다.

지난주 폐업을 앞두고 벼랑 끝에 내놓은 답이 고작 ‘2개월 연장 운영’이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쏟아질 비난만 피하고 시간을 벌어보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마저도 추가 운영에 대한 비용을 운영사에게 떠넘기려다 판이 깨졌다. ‘5월은 영업이 잘되니 운영사에서 비용을 부담해 2달만 더 운영해 달라’는 소리에 삼정기업마저 등을 돌렸다.

애초에 협약서 대로 인수할 자신이 없었다면 부산시는 이 지경이 되기 전에 새로운 동물원 콘텐츠나 성지곡 일대의 복합 개발안이라도 장만했어야 했다. 운영해봐야 적자가 뻔한 동물원을 민간에 매력적인 매물이 될 수 있도록 최소한 ‘분칠’할 준비라도 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사령탑이 사라진 부산시에 최대 500억 원에 달하는 동물원의 매수 결정을 당장 내리라는 건 가혹하다. 시정의 최종 결정권자인 오거돈 전 시장이 성추행으로 난데없이 종적을 감출 줄 누가 알았을까. 1년 10개월 가까이 시정을 주무르던 정무 라인도 자동면직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시청에 있는 누구도 자신있게 나서서 ‘더파크’의 인수나 재매각에 대한 결단을 내릴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아빠, 이번 어린이날 어디 가요?’라고 묻는 둘째에게 코로나 핑계를 대려다 문득 미안한 마음과 분한 마음이 동시에 겹쳐 침울해졌다. 내 고향 부산이 안타깝다. k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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