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7억 원어치’ 세계 최대 컨선 급유에 당황한 부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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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선사인 HMM 소속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호가 29일 처음으로 부산항 신항 4부두에 입항해 화물 선적과 동시에 기름을 넣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지난 9일 한국급유선선주협회에 비상이 걸렸다. 20여 일 뒤 부산항에 들어오는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HMM 알헤시라스호 급유 문제 때문이었다. HMM은 고유황유 7300t을 GS칼텍스에서 7억 3000만 원에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급유에 주어진 시간은 20시간. 현재 운용하는 급유선이 대부분 300~700t에 그치는 작은 배여서 수십 척이 붙어도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급유선협회는 고심끝에 현재 수송선으로 운항 중인 15주경호(2800t)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임시방편이었지만 시간당 700~800t을 넣을 수 있는 배는 15주경호 외엔 없었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 등에 긴급 면허를 신청해 수송선이던 주경호는 급유선으로 변신했다. 이어 현재 동남권에서 가장 급유 능력이 뛰어난 7동방호(700t)와 3대양호(700t)가 투입됐다.

축구장 4배 크기 2만 4000TEU
국적선 HMM 알헤시라스호
29일 7300t 급유에 애먹어
급유선 작아 수송선까지 동원
컨선 대형화에 급유선 대책을

29일 오전 4시. 전날 입항한 알헤시라스호에 급유가 시작됐다. 취재진은 급유선협회와 통선을 타고 급유 과정에 함께했다. 알헤시라스호 중심부로 예선을 포함해 주경호, 대양호, 동방호가 옹기종기 붙었다. 나름 규모가 큰 급유선들로 ‘라인업’을 꾸렸지만 2만 4000TEU 컨테이너선 옆에 붙자 이들 배는 해상에서 형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알헤라시스호는 20피트 컨테이너 2만 3964개를 실을 수 있다. 종전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인 MSC사의 MIA호보다 208개를 더 적재할 수 있다. 길이 400m, 폭 61m, 높이 33.2m로 갑판이 축구장 4배 크기다.

동방호가 제일 먼저 알헤시라스호에 붙어 파이프를 약 40m 높이로 올려 알헤시라스호 저유고에 꽂았다. 급유가 끝난 뒤엔 동방호가 그대로 본선에 붙은 상태에서 대양호가 동방호에 기름 4100t을 옮겨줬다. 이어 주경호가 동방호에 붙었다. 본선에 연결된 파이프를 정확히 붙였다 뗐다 하는 데 시간도 걸리고 누유 위험도 있어 급유선에 급유선이 기름을 옮기는 릴레이 방식을 고안한 것이다. 전례없이 급유선끼리 기름을 공급하는 방식에 관계자들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송선이 급유선으로 긴급 투입되며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첫 급유는 마쳤지만, 고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해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자연스레 제기된다. HMM은 오는 9월까지 알헤시라스호와 같은 규모 선박 11척을 더 운항에 투입하고 그때마다 급유는 국내에서 매달 2~3차례 이뤄진다. 현재로서는 이날처럼 수송선과 급유선 여러 척이 조를 이뤄 매번 급유를 진행해야 할 처지다. 싱가포르나 유럽에서는 첨단 대형 급유선이 일반화됐지만 국내 급유선은 수십 년째 제자리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급유선선주협회 문현재 회장은 “최소 한 번에 5000t 이상을 공급할 수 있는 대형 급유선 확보가 시급하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며 “공기업이 지어 운영을 민간업체에 위탁하거나 저리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알헤시라스호는 29일 밤 부산항을 떠나 유럽으로 첫 항해를 떠났다. 노선은 중국 칭다오~부산~중국 닝보~상하이~옌티엔~스페인 알헤시라스~네덜란드 로테르담~독일 함부르크~벨기에 앤트워프~영국 런던~스페인 알헤시라스~싱가포르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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