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잘못 봤습니다” 펜션 소파에 누워있다 도망치듯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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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적’ 오거돈 거제서 목격

부산여성단체협의회, 부산여성연대회의 등 부산지역 여성단체들이 4일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거돈 전 시장의 권력형 성폭력을 규탄하며 관련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성추행 추문으로 사퇴 이후 12일 만에 <부산일보> 취재진에게 목격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끝내 성추행과 불법 청탁 등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 답을 하지 않았다. 각종 의혹이 쏟아지며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칩거와 은둔만을 고집하는 건 전 부산 시정 책임자로서 무책임한 태도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부산일보> 취재진은 4일 오후 3시 20분께 거제시 남부면 4층 규모의 A펜션에서 오 전 시장을 목격했다. 그동안 다양한 경로를 통해 오 전 시장의 행적과 관련한 정보를 입수해 유력 은신처를 찾아내고 현장 확인에 나선 것이다. 목격 당시, 오 전 시장은 펜션 로비 한쪽의 소파에 누워 있었다. 회색 후드 티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마스크도 쓰고 있었다. 오 전 시장은 인기척을 느끼자 곧바로 검은색 선 캡을 쓴 뒤 소파 앞 테이블에 놓인 책 한 권을 들고는 펜션 밖으로 재빨리 빠져 나갔다.

후드 티에 청바지 입고 마스크
인기척 나자 황급히 펜션 밖으로
본보 취재진 질문엔 묵묵부답
인근 주민 “吳 칩거 사실 몰라”
현재 외부 리모델링 중인 펜션
손님 받지 않아 편하게 칩거한 듯

“시장님 맞느냐”는 질문에 오 전 시장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발길을 재촉했다. 기자는 곧바로 성추행, 수습 과정에서의 불법 청탁, 정무 라인 개입 등 각종 의혹에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오 전 시장은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라는 답을 남기고, 검은색 승용차의 운전대를 잡고 떠나 버렸다. 해당 차량은 오 전 시장 소유의 승용차인 것으로 확인됐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지난 23일 사퇴 이후 이달 4일까지 머무른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거제의 한 펜션.

오 전 시장이 목격된 펜션 로비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고, 오 시장이 도피하거나 운전하는 과정에서도 수행하는 사람이나 가족을 찾을 수는 없었다.

오 전 시장이 머문 펜션은 현재 외부 리모델링 중이어서, 손님은 받고 있지 않은 상태다. 지역 주민 등에 따르면 해당 펜션은 지난 겨울 공사를 시작했다. 펜션 소유주는 오 전 시장과 가까운 부산의 모 건설회사 대표 A 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A 씨는 거제도 출신의 사업가로 경남 지역에 펜션을 다수 운영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펜션 인근에서 만난 한 지역 주민은 “이 펜션은 15년 정도 된 곳으로 지난 겨울부터 리모델링하고 있어 손님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이 소파에 누워 있었던 펜션 로비 모습.

오 전 시장은 지난달 23일 사퇴 뒤 해당 펜션에서 외부 접촉을 피하면서 줄곧 지내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오 전 시장은 사퇴 기자회견 직후 부산시청을 빠져나간 뒤 거가대교 휴게소에서 시민들에 의해 목격돼, 거제도 모처에 머무를 것이란 추측이 이어져 왔다.

특히 펜션이 경남의 유명 관광지인 해금강 유람선 매표소 인근에 있어, 펜션 밖 외출은 최대한 자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펜션 인근 주민들도 역시 오 전 시장이 이곳에 칩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외부로 오 전 시장의 칩거 장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새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미뤄, 오 전 시장은 펜션에서 계속 칩거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물품 등을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공급받아 온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 전 시장이 휴양지에 숨어 있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허탈하다는 시민들 반응이 나오고 있다. 조 모(72·남구) 씨는 “정말 어이가 없다. 피해자는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고 시민들은 바닥에 떨어진 체면에 부끄럽다”며 “이를 책임져야 할 피의자인 오 전 시장이 거제도에서 유유자적 한가롭게 지내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 말했다.

글·사진=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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