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한번 못 잡고 떠나 보낸 어머니, 가슴에 사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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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첫 사망자 아들의 사모곡

‘만남愛 창’...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오전 대전 유성구 대전보훈요양원 비접촉 안심 면회 창구에서 한 면회자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면회하고 있다. 이 요양원은 코로나19 예방 등을 위해 운영 중인 비접촉 안심면회 ‘만남애(愛) 창’ 시간을 가정의 달을 맞아 하루 10회에서 20회로 늘리는 등 확대 운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 탓에 임종조차 못 지켰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첫 어버이날, 자상했던 어머니의 얼굴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부산 금정구에 거주하는 김원태(63) 씨는 올 3월 13일의 아픔을 가슴 속에 새기고 있다. 늘 다정했던 어머니가 하늘로 떠났지만 자신은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코로나로 부산에서 처음으로 사망한 부산 95번 환자(88세 여성)가 바로 김 씨의 어머니다.

“어머니 홀로 병상에서 쓸쓸한 사투
임종 못 지킨 슬픔 떨치기 힘들어
아들 대신해 어머니 마지막 함께해 준
부산시 공무원과 의료진에 감사”

김씨의 어머니는 돌아가기 하루 전인 12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고 음압병상으로 옮겨졌다. 김 씨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힘겹게 숨을 이어가고 있는 어머니를 중환자실에 홀로 둔 채 자신도 격리시설로 가야 했다. 김 씨는 “이미 담당 치료진으로부터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어머니를 두고 격리 시설로 갈 때도 설마하는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결국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하루 만에 지켜보는 가족도 없이 홀로 사투를 벌이다 숨을 거뒀다. 의심환자로 분류된 김 씨는 격리시설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간호사로부터 ‘어머니가 숨을 거뒀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변에서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그를 위로했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한 슬픔을 쉽게 떨처 낼 수는 없었다.

3월 14일 새벽 2시, 영락공원에서 어머니가 화장되는 순간에도 김 씨는 방호복을 입은 채 바라봐야 했다. 먼 길을 떠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도 만지지도 못했다. 눈물로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김 씨는 여든을 넘긴 어머니가 올해 들어 건강이 나빠지자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거기에다 어머니가 계시던 곳은 대구와도 가까운 경북 청도. 뉴스에서 코로나19 소식을 접할 때마다 부쩍 신경이 쓰였다. 어머니는 청도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었던 김 씨는 지체 없이 지난 3월 11일 모친을 부산에 있는 집으로 모시고 왔다가 이런 변을 당한 것이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김 씨를 찾아온 건 어머니에게 붙은 ‘부산 첫 코로나 사망자’라는 꼬리표였다. 부산이 아닌 청도 거주자인 탓에 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김 씨는 악의적인 비난에 맞서지 않았다. 그보다는 늦은 새벽까지 자신을 대신해 어머니의 마지막을 함께해 준 금정구보건소 의료진과 부산시 공무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 씨는 3월 23일 부산시 페이스북에도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과 어머니를 향한 비난을 의료진과 시민에 대한 감사로 돌린 것이다.

어머니 없는 어버이날을 맞은 김 씨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그리움이 묻어났다. “어머니는 항상 먼 곳에서도 제가 잘 되기만을 빌었습니다. 행여 몸이라도 아프실까봐 찾아뵈면 늘 ‘괜찮으니 오지 마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인 지난달 30일 어머니 49재를 마쳤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아프지 않으셨길 바랍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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