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롯데야, 정말 반갑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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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식 라이프부장

몇 년 만이던가? 초반 성적만 놓고 보면 작년 프로야구 최하위 롯데 자이언츠의 놀라운 반전이다. 무엇보다 롯데의 개막 5연승은 2013년 이후 7년 만이다. 누군가는 “롯데가 미쳤다”면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떨리고 기대되고 신나는, 짜릿한 기분이란다.

최근 수년간 롯데 성적이 바닥권(2017년 제외)에 머물자 팬들은 하나둘 멀어져 갔다. 특히 지난해 꼴찌로 주저앉아서인지, 올해는 기대를 많이 내려놓았다. 하지만 개막 초반 롯데의 반전에 돌아앉았던 팬들도 TV 앞으로 몰려들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 경기로 치러져 운동장에서 응원할 수 없는 처지가 됐지만, 초반 분위기만큼은 경기장으로 달려갈 기세다.

롯데 자이언츠의 ‘놀라운 반전’
그 뒤엔 경기 집중력, 공격력 발판

구단과 사령탑의 소소한 마음 씀
선수와 팬들까지 춤추게 해

올해는 ‘야구 사랑’ 동사형이었으면

그러나 주변에는 “아직은…” 이라며 섣부른 판단을 유보한다. 개막 초반이고, 초반 성적이 꽤 괜찮다가 주저앉은 경우도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2015년이 그랬고, 2013년도 그랬다. 롯데의 초반 상승세에 “갈수록 뒷심이 딸릴걸” “좀 하다가 주저앉겠지”라고 여전히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다음 경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호들갑을 떨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롯데를 보면, 분명 달라진 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경기 집중력이 높아졌다. 예전 같으면 3~4점을 내주면 쉽게 따라잡을 엄두를 못 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서는 한 점을 내주면 곧바로 한 점을 따라붙을 정도로 확연히 달라졌다.

로이스터 롯데 감독 때를 연상하는 막강 공격력도 초반 팀 승리의 발판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경기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렇게 초반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경기력보다 오히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부문에서 찾을 수 있다.

외국인 투수 애드리안 샘슨에 대한 롯데 구단의 배려는 그중 하나다. 샘슨의 아버지가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은 호주 스프링캠프 때 전해졌다. 이때 롯데는 주저 없이 샘슨에게 미국행을 권유했다. 그래도 샘슨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달 28일 미국으로 떠났다. 시즌 개막이 임박한 시점에서 샘슨의 미국 출장은 팀 전력 측면에서 보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 출범 38년 만에 처음으로 선수 복지를 위한 경조사 휴가가 신설돼 올해부터 선수의 직계 가족 사망 또는 자녀 출생으로 5일간의 경조 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하지만, 샘슨은 부친 사망 전이라 롯데 구단에서 보내 주지 않아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롯데 구단의 판단은 빨랐다. 주저 없이 보냈다.

5년 전만 해도 롯데는 달랐다. 손아섭이 위독한 아버지 곁을 지키기 위해 휴가를 신청했지만, 구단은 반려했다. 당시 손아섭은 한화와의 청주 원정 경기를 앞두고 투병 중인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수도 있다며 부산에 머물고 싶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구단에서 만류해 결국 청주행 3연전 버스에 올랐다. 손아섭의 부친은 청주 3연전이 끝난 후 돌아가셨지만,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롯데 구단과 사령탑은 큰 비난을 받았다.

구단의 소소한 마음 씀. 이런 게 선수들에게 미치는 ‘사기 진작’ ‘팀워크 결집’ 효과는 크다. 샘슨이 마운드에 투입돼 좋은 성적을 내는 것보다 그 가치에서 이게 몇 배 더 클 수도 있다.

2018년 보스턴 마무리 투수 크레이그 킴브럴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 리디아의 심장 수술로 스프링캠프 대부분을 함께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료들이 시범 경기에 ‘힘내 리디아’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맞춰 입고 뛰면서 한마음으로 응원을 보냈다. 그렇게 팀워크를 다진 보스턴은 그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

롯데 6번 타자 정훈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감독님께서 선수들을 많이 존중해주신다”라고 했다. 이 한마디가 롯데의 지금 분위기를 말해 준다. 롯데 구단과 사령탑의 달라진 이런 모습이 선수를 춤추게 한다. 예전의 롯데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런 구단, 사령탑의 모습은 나아가 팬들까지 감동하게 만든다.

롯데의 호성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예전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올해 1월 28일 롯데 이석환 사장은 취임식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전 감독 토니 애덤스의 말을 인용해 선수들에게 말했다. “유니폼 앞에 적힌 팀 이름을 위해 경기를 하면, 팬들은 유니폼 뒤 당신의 이름을 기억한다”라고. 롯데의 달라진 모습, 그 한가운데는 대표이사가 선수들에게 심어 준 자긍심도 분명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집 밖을 맘 놓고 나갈 수 없는 처지. 이런 상황에 ‘녹슬었던 거인 구단 롯데의 빛남’이 위안이 돼 팬들을 휘파람 불게 하고 있다. 팬들은 기대한다. 야구 사랑이 더는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이었으면 하고. “롯데야, 정말 반갑데이~”.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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