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아무도 몰랐다’의 씁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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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헌 사회부 행정팀장

한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돌았다. 위중설을 넘어 사망설까지 회자했다.

가짜뉴스 여부를 따지는 일에 우리 정부는 물론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나섰다.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이 북한 매체에 등장함으로써 해프닝은 일단락됐다. 사망설을 주장했던 미래통합당 국회의원들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 동태는 정확하게 알아도
부산시 수장 안위엔 별로 관심없는 듯
청와대·여당 “몰랐다”, 야당은 정쟁 이용
350만 부산시민 ‘지역 홀대’ 자격지심만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시종일관 김 위원장에 대해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다”고 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도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의 여러 말들을 보건대 다소 오락가락하기도 했지만, 평소 그 특유의 과장 화법을 본다면 미 정보당국이 북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걸 강조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즉, 우리 정부와 미국 측은 모든 대북 채널을 가동해서 김 위원장의 동태에 대해 이미 파악했을 것이고, 또 공유했을 것이다. 외교적인 문제를 고려해서 우리 정부나 미국 측이 확실하게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사실 우리 정부가 이를 몰랐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고 생각하기도 싫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의 정보 수집 능력과 대응 능력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지난달 23일 “한 사람에 대한 책임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사람에 대한 책임 또한 너무 크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부산시장직을 전격 사퇴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오 전 시장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성추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하고, 부산시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에 대해서도 열 번, 백 번 사죄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수사기관에 자진 출두 해야 하고, 한 시민단체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보궐선거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무책임한, 너무나 무책임한’ 오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과 사퇴 이면에 기자가 느낀 또 하나의 씁쓸함은 이를 아무도 몰랐다는 점이다. 성추행 피해자 측과 협상을 주도한 일부 정무 라인 외에는 그 누구도 이 사건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산시 고위 간부들은 물론이고 오 전 시장이 소속됐던 민주당, 청와대 등 모두가 사퇴 발표날에 처음 알았다는 반응이다.

북한의 최고 책임자인 김정은 위원장과 대한민국 제2의 도시 수장인 오 전 시장을 같은 급(?)으로 두기 어려울 수는 있겠다. 부산시민으로서 김 위원장의 사망보다 오 전 시장의 사퇴가 더 크게 다가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산시민의 입장일 뿐이다. 국정을 책임지는 청와대와 여당 입장에서는 김 위원장의 신변은 살필 필요가 있지만, 오 전 시장의 신변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는 말로도 들린다.

350만 명이 사는 부산 시정이 당장 행정 공백과 혼란으로 빠질 수 있는 사안인데도, 극도의 보안이어서 몰랐던 게 당연하다는 태도는 섭섭함을 넘어 부산시민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갑작스러운 리더십 공백에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 시민들을 더 불안하게 했다.

‘사전 인지’ 했다는 것만으로도 정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십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사전 인지’와 ‘사전 개입’은 전혀 다른 문제다. 총선 후 사퇴 등을 조율했다는 야당의 ‘사전 개입’ 의혹 제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만약 그렇다면 국민의 지탄을 받아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단지 ‘인지’ 했다는 것은 어떠한 지탄을 받을 일도 아니고, 오히려 부산시장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알았어야’ 당연한 일이다. 알고 대책을 세워야 정상적인 시스템이다.

차라리 청와대와 여당에서 ‘미리 알았지만,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다. 부산 시정과 시민이 혼돈에 빠지지 않도록 대비책을 강구했다’라고 했다면, 부산 시민들은 ‘지역 홀대’라는 자격지심에 빠지지 않고 안심하면서 정부와 여당에 더 깊은 신뢰를 보내지 않았을까.

‘대한민국 제2의 도시’, ‘해양수도’라는 부산의 위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인구나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시장의 위상을 보면 사실 서글프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 대선주자급 광역지자체장을 보유하지 못한 부산시는 이들 지자체가 이슈를 만들어 가는 동안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지도 못하고, 중앙부처와 언론에서도 소외돼 왔다.

깊어가는 경제 침체로 부산이 과연 제2의 도시가 맞느냐는 자조 속에, 부산시 수장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한 정부·여당과 이를 정쟁으로만 이용하려는 야당의 행태가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다. corni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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