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856. ‘빠던’까지 수출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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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우리가 쓰는 말이 아주 딱 맞아떨어지게 논리적이냐 하면, 사실 그건 아니다. 어차피 언어라는 것이 대개는 머릿수 싸움이어서, 예외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신각종(보물 제2호)은…비천상이나 당초문 같은 문양 없이 세 겹의 굵은 띠만 둘려 있다.’

이를테면, 인터넷에서 본 이런 문장에서 ‘세 겹’ 대신 ‘삼 겹’을 쓰면, 당장 무슨 소릴 하는 거냐는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세’와 ‘삼’이 같이 수량(혹은 순서)을 나타내는 말이라도 우리는 직관적으로 구별해 쓸 줄 안다. 즉, 책은 ‘세 권’이고, 기회는 ‘세 번’이며, 눈물은 ‘세 방울’이다. 반면, 건물은 ‘삼 층’이고, 햇수는 ‘삼 년’이며, 수능은 ‘삼 학년’이 치른다. 한데, ‘세겹살/삼겹살’을 보자면, 우리는 엄연히 ‘세겹살’보다는 ‘삼겹살’이라고들 즐겨 쓴다. 많이들 쓰니 삼겹살이 표준어가 됐고, 심지어 세겹살을 압도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건 예외일 뿐.

유유상종(類類相從)은 같은 무리끼리 서로 어울리는 걸 가리키는 사자성어다. 한데, 어디 사람만 그러랴. 말도 마찬가지여서 순우리말, 한자말, 외래어는 각각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바다변/해가’ 대신 ‘바닷가/해변’으로 쓰는 건 그 때문인 것.(물론 해변이나 해안이라는 한자말만으로는 불안해서 ‘해변가/해안가’를 더 만들기는 했지만, 어쨌든 원칙은 ‘끼리끼리’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문설주’나 ‘개천가’는 꽤 재미있는 말이다. ‘門설柱’는 한자말+순우리말+한자말로 이뤄졌고, ‘개川가’는 순우리말 사이에 한자말이 끼어든 꼴. 어쨌거나 이 둘은 그래도 표준어가 됐지만, <남성패션, 경계가 사라진다 “레드부터 뱀피까지”>라는 기사 제목에 나온 ‘뱀피’는 많이 부자연스럽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뱀’은 순우리말이고 ‘피’는 한자말이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뱀피 대신 이렇게 올라 있다.

*사피(蛇皮): 뱀 껍질. 또는 뱀 가죽.

이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 ‘호피(虎皮)’라고는 해도, ‘범피’라고는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메이저리그가 개막에 엄두도 못 내는 사이에 한국프로야구를 미국 스포츠채널 ESPN이 중계하면서 난리가 났다. 특히 야구 본고장인 미국에선 금기시된 배트 플립(bat flip·배트 던지기)에 환호하는 기미마저 보인다. 한데, 저게 ‘빠던(ppa-dun)’으로 소개되고 있어 입맛이 쓰다. 빠던은 ‘빠따 던지기’를 줄인 말이니 끼리끼리법칙에서 벗어난 데다, ‘빠따’라는 일본식 외래어가 한국말로 오인될 판이기 때문인 것. 이러다가 이제는 거의 사라진 ‘만땅’ 같은 일본식 외래어도 살아 돌아올까 겁난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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