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중복항로 요건 되면 허가” 출혈 경쟁 부추기는 ‘공개모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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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도 여건이 돼야 하는 거죠. 가뜩이나 승객이 없어, 다니는 배도 줄이거나 멈춰야 할 판에 또 허가를 내준다는 건 다 같이 죽으란 소리죠.”

경남 남해안 섬과 육지를 잇는 여객선 운영사들이 무분별한 중복항로 개설로 인한 과잉 경쟁으로 공멸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허가권을 쥐 마산지방해양수산청의 무책임한 면허 남발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기존 항로의 수익성이나 수송능력은 차치하고 요건만 충족하면 새 항로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한 현행 ‘공개모집’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인다.

마산해양수산청,통영~사량도 추가 선정
여객선사들 “다 같이 죽으란 소리” 반발

마산지방해양수산청은 지난 14일 자 공고를 통해 통영(미수항)~진촌(사량도) 항로 새 여객운송사업자로 A해운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마산청은 “해운법령의 요건을 충족하고 이용객의 해상교통 편의 증진 등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A해운은 2018년부터 통영 미수항과 사량도 능양마을을 잇는 여객선을 운영하다 최근 경영악화로 휴항한 뒤 최근 신규 항로 개설을 신청했었다. A해운은 신규 항로에 기존 여객선을 투입해 하루 4항차 운항할 계획이다.

문제는 진촌 항로가 이미 포화상태인 중복항로라는 점이다. 이 항로는 사량도에 본소를 둔 사량수협이 올해로 25년째 여객선을 운영 중이다. 도산면 가오치선착장을 출발해 진촌마을이 있는 금평(상도)-덕동(하도)을 거쳐 돌아온다. 한 번에 420명을 수송할 수 있는 여객선을 하루 6번 정기운항하는 등 하루 최대 12차례 오간다.

가장 큰 수입원 중 하나가 여객선 사업인 사량수협은 이번 중복항로 개설로 생존권이 위협받게 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최근 이용객이 줄어 감원, 감항, 감척 등을 고민 중인 상황에 경쟁사에 승객을 또 뺏기면 자칫 여객선 사업 자체를 접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량수협 관계자는 “시장은 쪼그라드는데 경쟁사만 늘어나면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다”면서 “이용자 입장에서 당장은 선택지가 늘어 좋겠지만 장기적으로 여객선 운항이 중단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에게 돌아간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번에 신규 항로를 받은 A해운이 기존 항로를 포기하면서 뱃길이 끊긴 주민들은 발을 구르고 있다. 사량도 능양, 백학마을 주민들은 지자체와 마산청에 진정서를 내고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신규 항로 공모제’를 도입했다. 새 사업자의 진입 문턱을 낮춰 경쟁 구도를 만들고 업계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다. 그러나 실상은 부작용이 더 크다.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항로 개설을 신청해 사업자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알짜 항로의 경우, 하나의 종착지를 두고 3~4개 선사가 중복 항로를 개설한다. 경남에서 가장 많은 여객선 항로가 있는 통영의 경우, 주요 관광지인 한산도(매물도)와 욕지도, 사량도에 연거푸 중복 항로를 허가하면서 대다수 선사가 적자에 허덕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마산청은 ‘공정한 경쟁을 장려하는 해운법의 목적에도 부합된다’며 계속해서 중복항로를 허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도 허가관청은 법적 하자가 없다며 뒷짐”이라면서 “공모제의 틀은 유지하면서 항로 고시에 앞서 신규 개설 필요성과 사업성을 면밀히 검토하는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민진 기자 m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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