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 보호장비 인권침해 시정권고, 법무부가 뭉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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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시설 보호장비 착용 등 재소자 관리 방식이 각종 사고와 인권 침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교정 당국이 안일한 대처로 일관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결국 법무부의 이러한 안일한 태도가 부산구치소에서 신입 재소자가 14시간 동안 보호장비에 묶여 있다 숨지는 사고(부산일보 21일 자 2면 등 보도)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호장비 장시간 사용 비일비재
‘하루 초과 사용’ 전체의 절반 달해
인권위 2월 15개항 개선 권고 불구
법무부 “자해 위험” 일부 불수용
결국 석 달 만에 구치소 사망사고


올해 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보호장비 사용 최소화 등 ‘교정시설 수용자 인권증진 개선방안’을 법무부에 권고했지만, 법무부가 권고를 일부 수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2018년부터 인권위는 외부 전문가들과 10개 교정시설을 방문하고 수용자 74명을 심층 면접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인권위는 법무부에 △최소한의 보호장비 사용 △징벌 중 금치(독방 수용) 기간 15일로 제한 등 15개 권고사항을 전달했으나, 법무부는 6개 권고사항을 수용하지 않았다. 당시 인권위는 법무부의 권고사항 일부 불수용 사실을 밝히면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사, 징벌 및 보호장비 사용 과정에서 인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전향적인 조처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당시 법무부가 인권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교정시설 내 보호장비 장시간 사용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부산구치소의 경우 2017년 8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보호장비 사용 건수는 모두 382건이었다. 이 중 착용 시간이 24시간을 넘긴 경우도 211건으로 절반을 넘겼다. 3일 넘게 착용한 사례도 29건이었고, 10일을 넘긴 경우도 있었다.

나머지 조사대상인 9개 교정시설에서도 전체 보호장비 사용 건수 중 30~40%가 24시간 사용을 넘겼다. 대부분 재소자가 잠을 잘 때도 보호장비를 계속 착용했고, 부산구치소 등 일부 교정시설에서는 용변을 볼 때도 착용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보호장비는 재소자 손발 등을 결박하기 위한 금속보호대, 벨트보호대, 양발목보호장비 등 도구를 뜻한다.

이와 관련, 인권위는 수면 시간 보호장비 해제 등을 권고했지만, 법무부는 “취침 중에도 자해나 위협 행위가 있을 수 있다” “보호장비의 사유가 소멸하면 즉각 해제한다” 등 이유로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반면 당시 인권위는 보고서에 “흥분한 수용자가 오히려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보호장비로 인해 더욱 흥분하는 측면도 있다”며 장시간 보호장비 사용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법무부는 보호장비 착용 때 건강 상태 점검 권고에 대해서는 “이미 형집행법이 높은 수준의 건강 상태 확인을 규정하고 있다” “의무관이 1일 1회 건강상태를 확인토록 하고 이를 ‘수용자 의료관리지침’ 개정 때 반영하도록 하겠다” 등의 답변을 내놓았다. 이를 근거로 인권위는 해당 권고를 ‘수용’된 것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정신병동 내 환자 강박 때 1시간 단위로 호흡·맥박·혈압 등을 확인토록 하는 보건복지부 지침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의 조치다. 현행 형집행법도 보호장비 착용에 따른 재소자 건강 상태 확인을 원론적인 수준에서 규정해 사실상 교도관 재량에 맡겨진 상태다. 최근 부산구치소 입소자 사망 사고 때처럼 주말 등 의료진 공백이 발생할 경우 1일 1회 의료진의 건강상태 확인조차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법무부는 보호장비 착용 등 재소자 인권과 안전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있느냐는 질문에 “보호장비 착용 시 의무관이 통상 8시간 단위로 수용자의 건강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의무관의 출장·휴가 등으로 정당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 의료관계 직원이 대행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전달했다.

올 1월 인권위의 권고 조치 이전에도 교정시설 내 보호장비 오·남용 논란은 제기돼 왔다. 2011년 서울구치소에서 보호장비 착용 노역수형자에 대한 교도관 폭행 사건, 2014년 양심적 병역거부 수용자에 대한 28시간 보호장비 착용 등이 논란이 됐을 때도 인권 침해와 안전 문제가 지적됐으나 크게 개선된 바는 없다.

한편 부산구치소 신입 재소자 A(37) 씨는 입소 당시 공황장애 등을 밝혔지만, 14시간 넘게 보호장비에 결박됐다가 지난 10일 입소 32시간 만에 숨졌다. 이후 A 씨 사망에 대한 인권위 조사와 법무부 감찰이 진행 중이다.

이우영·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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