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로나로 지친 일상에 한 잔의 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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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충순 시인·부산차인연합회 회장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쓴 지 오래다.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나온 우리나라도, 격랑의 시간을 정말 힘겹게 헤쳐 나왔다.

다행히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등 참신한 아이디어와 몸을 던져 코로나와 싸운 백의의 전사들, 온 힘을 다한 정부의 대응으로 이번 역시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세계도 ‘방역 선진국’ 대한민국에 찬사와 부러움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예상했던 이상으로 길어진 코로나의 악몽은, 심각한 상흔과 후유증을 불러오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경제와 함께, 시체말로 ‘멘붕’을 겪은 국민들의 마음 밭도 걱정이다.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몸의 병’을 경험한 사람은 물론, 요행히 이를 면한 사람에게도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 따른 심각한 트라우마가 남게 되기 때문이다. 전국의 여러 자치단체와 대학들은 주민들의 불안감 해소와 정신력 회복을 위한 심리상담에 나서고 있다. 여느 때에 비해 심리 혹은 명상 관련 도서 판매가 부쩍 늘었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울감, 불안감 등을 씻어내고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되찾는 방법으로,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것은 어떨까. 예로부터 불가(佛家)의 선지식들은 차를 마음을 맑게 하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방편으로 삼았다. 차와 선(禪)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는 둘이 한 몸과 같다 하여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로 함축되었다. 단순한 수분 공급원이 아니라, 차를 준비해서 정성을 다해 우려내고 격을 갖춰 마시는 일련의 과정은 바로 선 수행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래서 당나라 말기의 조주종심(778~897년) 선사는 제자들의 이런저런 질문에 한결같이 끽다거(喫茶去), “차나 한잔 들고 가시게”라고 답한 것으로 유명하다. 차를 마시며 선정에 들면 절로 답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뜻이다.

차에는 카테킨, 카페인, 비타민을 비롯한 수십 가지 유효성분이 들어있어 항산화, 혈관 건강, 면역증진 등 우리 인체에 도움을 준다. 특히 흥분억제와 뇌 신경 기능 조절 등에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차가 ‘마음의 약’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다행히 우리 부산 경남은 차의 본고장이다. 우리나라의 차는 공식적으로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에 갔던 사신 대렴(大廉)이 씨앗을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 등 여러 문헌에는 그 훨씬 전부터 경덕왕(재위 742~765년) 때의 충담 스님, 원효대사(617~686년), 진흥왕(재위 540~576년) 때의 화랑도 등 많은 이들이 차를 가까이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능화가 쓴 <조선불교통사>는 가락국 수로왕비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시집올 때(서기 48년) 차 씨앗을 가져와 심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침 차의 계절이다. 차는 24절기의 여섯 번째 드는 곡우가 지나기 전에 따서 만든 우전차를 최상품으로 친다. 올해의 경우 지난 4월 19일이 곡우여서 시중에 이미 우전차가 나와 있고 두물차나 다소 큰 잎으로 만든 발효차들까지 선을 보여 별 부담 없이 다양한 차를 고를 수 있다. 하루 한 번이라도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찻자리에 앉자. 고요한 가운데 물 끓는 소리와 차 따르는 소리, 방 가득 퍼지는 청량한 다향에 젖다 보면 마음은 저절로 평안해져 어느덧 삼매에 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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