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김종인 비대위’ 빨리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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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택 서울본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래통합당의 ‘김종인호’가 마침내 항해를 시작했다. 먼저 무사귀환을 바란다.

이제 갓 출항하는 김종인호에는 미안한 얘기지만 빨리 임무를 끝내고 본업으로 복귀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선장도 아니고, 선주는 더더욱 아니다. 보잘것없는 존재로 추락한 제1야당이 잠시 운항을 맡긴 대리인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이 승선하는 배는 원양어선이 아니라 구급선이다. 고기떼가 걸려들기를 바라고 정처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할 여유가 없다. 빨리 위기를 수습하고 서둘러 원주인에게 키를 넘겨 줘야 한다. 통합당이 마지못해 보장한 내년 4월까지의 기한을 무작정 기다릴 것이 아니다.

한시 조직 ‘비대위’ 주인행세 안 돼
보수 통합과 정책 정비에 국한돼야

보수유권자 진보정책 호응하지 않아
‘정도’ 지키면서 ‘변화’ 선도해야

김종인 체제선 PK 재·보선 승리 없어
늦어도 내년 1월 새 지도부 선출해야


그의 나이(81세)를 문제 삼는게 아니다. 윤미향 의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이용수 할머니는 올해 92세다. 그야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의 ‘자세’가 문제다. 그는 내년 4월까지 임기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비대위원장을 못맡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세상에 임기를 정해 놓은 비대위가 어디 있나? 주호영 원내대표는 그런 김 위원장의 ‘과욕’에 장단을 맞췄다.

비대위는 한시 조직이다. 그 조직의 우두머리도 임시직이다. 자신이 주인인 양 행세해선 안된다. 그의 임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서 부터 이번 총선 때까지 뿔뿔이 흩어진 보수 세력을 통합하고 뒤죽박죽된 정강정책을 바로 잡는 것이다. 새 인물을 수혈하고 당의 노선을 바꾸는 것은 비대위원장이 할 일이 아니다. 그건 전당대회를 통해 정식으로 선출된 새 지도부가 할 일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통합당을 완전히 뜯어 고치려고 한다. 보수의 근간마저 허물어 버리겠다는 태도다. 그는 “진보, 보수, 중도라는 말을 쓰지 말라. 자유우파라는 말도 쓰지 말라”고 했다. 보수와 진보라는 말은 쓰고 싶어서 쓰는게 아니다. 세상의 모든 정당은 그 근간 위에서 존재한다.

아무리 표(票)가 급해도 통합당이 정의당의 정강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진보 정당의 전유물인 기본소득제와 전국민 고용보험제를 공론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모든 진영이 참여하는 공개 토론회를 열어 당의 노선을 결정해야 한다. 충분한 논의와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김 위원장 혼자서 결정할 일이 절대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김 위원장에겐 그런 자격이 없다.

통합당이 ‘꼰대’ 이미지를 벗겠다고 3040세대만을 전면에 내세울 수는 없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 젊은 층을 중시하되 다양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좌파의 노선을 무작정 따라 한다고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이 통합당을 지지하는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다수의 보수 유권자들은 진보 정당의 정책에 쉽게 호응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통합당이 ‘정도’를 지키면서 ‘변화’를 선도하는 것이다. 보수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조직의 안정성, 확고한 국가관 등을 기본으로 한다. 그게 무너지면 보수가 아니다. 우리 유권자들이 지난 세 번의 선거에서 보수정당에 철퇴를 가한 것은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합당은 4·15 총선의 참패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엄밀히 말해 민주당이 잘해서 총선에서 압승한 게 아니다. 통합당이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참패한 것이다. 통합당은 현역 교체에만 급급한 나머지 경쟁력 없는 신인들을 마구잡이 공천해 조직의 근간을 흔들었고, 대중성과 득표력이 거의 없는 황교안과 김종인에게 선대위를 맡겼다. ‘코로나 지원금’ 문제로 갈팡질팡하는 사이 유권자들은 통합당에 등을 돌렸다. 통합당 입장에선 민주당이 수도권과 호남에서 압승한다는 소식에 부산·울산·경남(PK)에서 견제심리가 작용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김 위원장이 내년 4월 PK 재·보궐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내년 PK 재·보선은 1년 뒤 실시되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통합당 입장에선 무조건 이겨야 하는 선거라는 의미다.

그러나 김종인 비대위에는 PK 재·보선을 승리로 이끌 요인이 거의 없다. PK 정서를 대변하는 인물도, PK 현안에 대한 관심도 없다.

물론 통합당이 상향식 공천을 통해 내년 PK 재·보선 후보를 추천하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존재 여부는 크게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현 집권세력의 주도면밀한 선거준비와 집중적인 공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PK 정서와 맞지 않은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재·보선이 치러질 경우 통합당은 참패를 면하기 어렵다.

김종인 비대위를 하루빨리 끝내고 늦어도 내년 1월까지는 정식 지도부를 선출해야 한다. 통합당 PK 정치권 입장에선 지역 출신 지도부가 구성되면 금상첨화겠지만. kt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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