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858. 부탁은, 바로 지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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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여성학 연구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제발 젠더의 번역어 대안을 찾아 사용해 달라고. 여성주의자에게 요청하고 싶다. 제발 이 개념어를 사용해서…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해 달라고.’

어느 칼럼에서 본 구절이다. 한데, ‘부탁하고 싶다/요청하고 싶다’가 부드럽지 않다. 보조 형용사 ‘싶다’를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은 이렇게 풀이한다.

‘(동사 뒤에서 ‘-고 싶다’ 구성으로 쓰여)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욕구를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먹고 싶다./보고 싶다./가고 싶은 고향./어릴 적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 ‘부탁하고 싶다/요청하고 싶다’도 쓰지 못할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저 문장에선 굳이 저럴 게 아니라 ‘부탁한다/요청한다’로 쓰는 게 글도 짧아질뿐더러 훨씬 더 힘 있게 느껴진다.

‘이 세 번의 대규모 출산 시기에 해당하는 인구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6.7%를 차지하고 있다./현재 이들은 각각이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비슷한 꼴인 ‘-고 있다’ 또한 될 수 있으면 쓰지 않는 게 좋다. 보기글에 나온 ‘차지하고 있다/살아가고 있다’ 역시 ‘차지한다/살아간다’로 바꾸면 더 짧고 힘 있는 글이 되기 때문. 아래 문장에 나온 ‘펼치고 있다/보이고 있어’ 또한 ‘펼친다/보여’면 충분하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맞춰 전국 각 지자체에서는 지역 특성에 맞게 볼거리, 먹을거리 축제를 앞다투어 펼치고 있다. 그런데 그 축제장에 가 보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기본적인 문제가 많이 보이고 있어서 다소 실망스러울 때가 있다.’

물론, 사진설명이라면 현장감과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진행형을 쓸 수도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7일 유럽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PSG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6분 헤딩으로 선제골을 터뜨리고 있다. 작은 사진은 골을 넣은 직후 팀 동료인 다니 카르바할과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호날두.’

하지만 이 사진설명에서도 ‘터뜨리고 있다/세리머니를 하고 있는’이 ‘터뜨렸다/세리머니를 하는’이면 충분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줄여도 될 때가 많다. ‘철골이 부식돼 있는 모습’도 ‘철골이 부식된 모습’이면 된다.

‘-고 있다’를 쓰지 않아야 할 이유는 더 있다. ‘열차가 도착하고 있습니다’ 같은 엉터리 표현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착하다’는 ‘목적한 곳에 다다르다’라는 말이어서 이미 동작이 완료된, 계속 진행이 불가능한 상태. 그러니 저 문장은 ‘열차가 들어옵니다’ 정도가 적절했던 것.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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