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의 옛말은 ‘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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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지장(禿旨場)은 부산에 있던 오일장이었다. 구체적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부산시나 지자체 자료에는 ‘오늘날의 구평동 북쪽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도로만 나온다. 어딜까. 우선은 1740년 편찬 <동래부지>. 독지장이 섰을 마을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동래) 관문에서 대치리는 36리, 감천리 42리, 독지리 44리, 장림리·서평리 45리, 다대리 50리’가 그것이다. 장림 근처 있었다는 이야기다.

다음은 부산고지도(사진). 동아대 박물관이 소장한 19세기 후반 이 지도는 독지리를 콕 집어 알려준다. 동매산을 지나서 왼쪽으로 틀면 장림, 서평진이고 직진하면 독지였다. 독지는 강마을. 바로 앞이 낙동강이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명호(鳴湖), 즉 명지(鳴旨)와 마주 보았다. 독지와 명지는 형제처럼 돌림자가 같았다. 부산 지명에 둘뿐이지 싶은 ‘지(旨)’ 마을이 낙동강 이쪽저쪽에 있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명지와 마주 보는 강마을은 현재 사하구 하단. 독지와 하단은 같은 지역일까. 단언하건대 100% 같다. 고지도에 그렇게 나오지만 고문헌이 그럴 가능성을 내비친다. 고문헌에는 두 지명이 동시에 나오지 않는다. 독지가 나오면 하단이 안 나오고 하단이 나오면 독지가 안 나온다. 19세기 후반 이후 어느 시점에 어려운 한자 독지 대신 하단이 떴으리라. 독지장도 하단장으로 개명하고 ‘신장개업’ 했으리라.

‘부산의 장타령’에서도 그걸 확인할 수 있다. 구전 민요 장타령에 나오는 부산의 시장은 다섯. 하단장, 명호장, 부산장, 구포장, 동래장이다. 하단장은 나오지만 독지장은 나오지 않는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명호장 위치다. ‘(하단) 나루를 건너 명호장’이라고 밝힌다. 독지가 하단이란 심증이 더욱 굳어진다. 독지장과 하단장은 인기상품이 같았다. 소금과 갈대 수공품 등등이었다. 두 시장이 같은 시장이란 방증이다. 자염최성(煮鹽最盛). 명지 소금 자염은 조선 최고였다. <대동여지도> 김정호가 지도에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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