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66. 환원과 회기의 미학, 김청정의 ‘비움과 채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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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정(1941~)은 1981년 제16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대표 작가로 참가하고 김세중 조각상, KNN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신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양성에 힘썼다. 정년퇴임 이후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김청정에게는 ‘지역’이나 ‘원로’라는 수사가 어울리지 않는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을 해 왔지만 그의 예술세계는 지역을 넘어섰고, 청년 못지않은 실험적인 작품을 지금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부산의 동시대 미술계에서 ‘형식적 완성도와 일관된 작업의지’를 구현하고 있는 가장 뛰어난 작가라 평가해도 별다른 반론이 없을 듯하다.

그는 절제된 조형언어를 선호하는 스타일 때문에 197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영향 여부가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청정이 보여 주는 단순함 속에는 기계적인 차가움보다는 인간적인 정감이나 동아시아적 미감이 짙게 배어 있다. 거울처럼 투명한 스텐의 질감 속에 자연을 반영하거나 작품을 비추는 빛과 그 그림자를 작품의 요소로 공존시킨다. 공간을 단지 배경으로만 인식했던 기왕의 조각과 달리 그의 작품은 세상의 개입을 허락하고 있다.

‘비움과 채움 5’는 마천석과 아크릴, 유리, 볼록렌즈, 황동으로 제작된 오브제에 LED를 이용한 빛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작가가 일관되게 작업해 오던 사각과 원이라는 단순한 형태에 ‘빛’이라는 새로운 조형요소를 더한 작품이다. 김청정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각은 빛과 그림자의 예술”이라고 했다. 90년대 후반 ‘빛살·울림’ 시리즈나 2010년부터 진행된 LED를 이용한 작업들은 모두 빛이라는 요소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작품의 제목 ‘비움과 채움’이라는 이항대립적인 개념은 존재의 ‘있음’과 ‘없음’, 그리고 그 사이 어디쯤에 예술의 진실이 있다는 신념의 표현이다. 다시 말해 김청정이 끊임없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보이는 빛이 아니라 정신세계의 빛, 내면의 울림이 현상을 넘어 밖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은 ‘환원’과 ‘회기’의 미학을 통해 인간과 문명의 근원을 성찰하는, 그의 표현대로 “조각은 다름아닌 시(詩)”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양은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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