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숨을 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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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현지시간) 밤 미국 수도 워싱턴 상공에 블랙호크가 떴다. 블랙호크! 미군의 대표적 공격형 전투 헬기다. ‘전차 킬러’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91년 걸프전에 대규모로 투입돼 위용을 떨쳤다. 그런 헬기가 민간 시위대를 위협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다. 시위대는 단지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은 블랙호크의 출현에 얼마나 놀라고 또 두려웠을까.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참상 관련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우리로선 범상히 보아 넘길 수 없는 장면이었다.

지난달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졌다. 경찰은 체포 과정에서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렀고,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고 외치다 사망했다. ‘숨을 쉴 수 없다’ 이 말은 현재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구호가 돼 미국 전역을 뒤덮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다. 영국, 독일, 캐나다 등은 물론 심지어는 이란과 이스라엘까지, 세계 곳곳에서 ‘숨을 쉴 수 없다’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위에 나선 자국민을 폭도로 규정하고 총격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의 평소 ‘막가파식’ 성향을 고려하면 단순한 으름장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수도 워싱턴 외에도 여러 주에 주방위군이 투입됐고, 미 국방부는 연방군 투입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시민을 쳐부숴야 할 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제 플로이드 사건은 일개 경찰의 일탈이나 인종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국가의 폭력이라는 문제로 비화됐다.

국민을 향한 참혹한 국가폭력은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국민 주권의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현대에도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에게선 1980년 광주항쟁이 있었고, 중국에선 1989년 천안문 사건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선 1965~66년 수십만 명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처형당했다. 이란에선 지난해 반정부 시위 유혈 진압으로 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전시 상황이 아닌 평시에 이루어진 국가폭력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도 아닌 민주주의와 다원주의의 모범 국가로 추앙받던 미국에서 지금 그 같은 야만의 일이 벌어지려 한다. 인간의 이성과 문명이란 게 이토록 허망한 것이다. 숨을 못 쉴 정도로 기가 막히는 현실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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