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가난·코로나, 미국 흑인들이 직면한 3가지 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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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열린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항의시위에서 한 남성이 차량을 몰고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다 바리케이드에 막히자 권총을 휘두르며 차량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돌진하는 차량을 막기 위해 운전석 창문에 매달렸던 27세 흑인 남성 한 명이 총에 맞아 쓰러져 의료진들이 그를 살펴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폭력으로 숨진 지 13일째를 맞았지만, 미국 곳곳에서 시위의 열기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수도 워싱턴DC에서는 백악관 주변 라파예트광장에 이날 오전부터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모이는 등 열흘째 시위가 이어졌다. 봉쇄된 백악관 주변 도로에서는 시위대가 유명한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1965년 앨라배마 셀마 행진을 재현하기도 했다. 고온다습한 날씨 속에도 시위대는 오토바이를 탄 경찰의 호위 속에 폐쇄된 고속도로를 따라 걸으며 구호를 외쳤고,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며 백악관으로 향했다.


식지 않는 ‘플로이드 사망’ 시위
경찰 면책특권 폐지·개혁 요구
“천문학적 경찰 예산 삭감해야”

아스팔트 시위대에 주민들 환호
공화당 롬니 의원도 행진 참여
미 국민 80% “상황 통제 불능”

이들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잠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도 했다. 이를 본 주민이 냉수를 시위대에게 나눠줬고, 일광욕을 하거나 운동을 하던 시민들은 환호로 화답했다.

공화당 상원의원 밋 롬니(유타)도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복음주의 신도들 수백 명과 함께 워싱턴DC에서 행진에 참여했다. 이 행진 행렬은 1000명 이상으로 곧 불어났으며, 롬니 의원은 “폭력과 잔인함을 끝내고 사람들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할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시위가 평화롭게 흘러가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DC에 배치됐던 주 방위군의 철수를 지시했다. 뉴욕에서도 항의시위는 평화롭게 열렸다. 7일 오후 시위대 수천 명이 콜럼버스서클 근처에서 행진을 벌였지만, 경찰은 지금까지와 달리 경찰차로 이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다만 시위대가 ‘투표로 그를 몰아내자’고 외치며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하자, 트럼프인터내셔널호텔 건너편 길가에는 진압 장비로 무장한 일부 경찰관이 배치됐다.

민권 운동을 상징하는 제시 잭슨 목사는 이날 루이빌에서 열린 예배에서 “미국의 흑인들이 오늘날 3가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직면하고 있다”며 경찰의 인종차별적 폭력, 가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들었다.

잭슨 목사는 또 의회가 경찰에 부여한 면책 특권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경찰관)이 누군가를 죽이면 기소돼야 한다. 그들이 법 위에 살 권리는 없다”고 강조했다.

로스앤젤레스, 세인트폴, 미니애폴리스, 덴버 등에서 이미 통행금지령이 풀린 데 이어 이날도 뉴욕과 시카고, 필라델피아, 버펄로가 통행금지를 해제했다.

한편 이번 시위를 계기로 경찰 예산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미국 경찰의 1년 예산은 1000억 달러(약 120조 원)를 넘고, 뉴욕시 경찰 예산만도 60억 달러(약 7조 2000억 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데 비해 경찰 서비스는 형편이 없다는 게 납세자들의 불만이다. 특히 경찰 폭력의 피해가 집중된 흑인 사회에선 경찰을 공공안전의 수호자가 아닌 지역사회의 위협자로 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흑인 사회의 거부감은 남북전쟁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예산 삭감을 통해 경찰에 확실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 일부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사건 처리를 위한 예산도 경찰이 아닌 사회복지 분야로 이전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찰 예산이 학교나 병원, 주택지원, 복지 등에 사용될 경우 지역사회의 안전이 더욱 향상될 것이란 논리다.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발생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선 경찰 조직 해체라는 급진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 밖에도 미국 각 주 의회에선 지역 경찰과 지역사회의 협력을 증진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 국민의 80%가 미국 내 상황이 ‘통제 불능(out of control)’이라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 뉴스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8명꼴로 ‘통제 불능’이라고 답했다. 반면 15%는 ‘통제되고 있다’ 3%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느끼고 있다’고 각각 답변했다.

응답자의 63%는 자신이나 직계가족이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에 대해 ‘매우’ 또는 ‘약간’ 우려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54%는 코로나19가 억제되고 경제가 정상화되기까지 1년이나 그 이상이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일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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