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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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이 바른말이지만 머릿속에는 오래전부터 ‘삐라’가 각인되어 있다. 1960~70년대 북한은 당시 자신들의 경제력을 과시하거나 남한 체제를 비판하는 전단을 대거 살포했다. 지금 중·장년층들은 이걸 발견하면 바로 신고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파출소에 들고 가면 학용품으로 바꿔주기도 했다. 북한도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경제적 여유도 없지만, 남북의 국력 차이가 벌어져 효과가 없어서다. 북한은 요즘 유튜브 홍보에 신경을 많이 쓴다. 평양의 일상을 전하는 유튜브를 국내에서도 볼 수 있는 시대다.

전단은 일제가 식민 지배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한반도에 처음 등장했다. 2차 대전 당시 미군도 엄청난 양의 전단을 일본에 뿌렸다. 뜻밖으로 일본의 항복을 권유하는 내용이 아니라, 폭격 예정지가 어딘지를 알려주는 안내문 성격이었다고 한다. 대체 왜 그랬을까? 미군은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을 최대한 피하고자 애썼다는 이미지를 남기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미군 전력이 압도적이라 막을 수 없다는 고도의 심리전도 숨어 있었다. 전단의 수준이 이 정도면 좋겠다.

대북전단 살포 논란으로 남북관계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김여정 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한 지 하루 만에 북한은 남북군사합의 파기와 남북연락사무소 폐쇄 위협에 나섰다. 어제 오전에는 남북연락사무소 전화 연락이 두절되어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사실 대북전단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닌데 북한 반응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탈북자 단체들은 해마다 10여 차례 대북전단을 뿌린다. 지난달 대북전단에는 ‘새 전략핵무기로 충격적 행동하겠다는 위선자 김정은!’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북한은 이에 대해 “최고존엄과 체제에 대한 중상 모독은 총포 사격보다 더 엄중한 최악의 도발이다”라며 격분하고 있다. 종전에 보낸 전단 중에는 김정은 부인 리설주의 사진을 포르노 표지와 합성한 낯 뜨거운 것도 있었다.

서로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2018년 판문점 선언을 통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한 합의를 깬 것은 우리다. 탈북자 단체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또다시 전단 100만 장을 뿌리도록 해서는 안 된다. 미래통합당도 과거 여당 시절 대북전단의 자제를 촉구했다. 평화가 설 자리를 좁히는 대북전단, 과연 누구를 위해 뿌리는 것인가. 어렵게 만든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폐쇄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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