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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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라이프부 레저팀장

얼마 전 회사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문화부 기자 시절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문화계 인사를 만났다. 그 분야를 담당했을 때 그는 어디서 만나든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한 척을 했었다. 회장으로서 자신이 맡은 단체를 호의적으로 봐 달라는 의미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어느 행사장이든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다가와 유난스럽게 인사를 해 당시 부담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랬던 그가 그 날은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모를 리가 없는데 이젠 문화부를 떠나 다른 부서로 왔으니 그에게 이용가치가 없다는 뜻인가 싶어 씁쓸한 기분이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산 몇 달
알던 이들 못 알아보고 지나치기도
최근 인사한 이는 얼굴 제대로 몰라
가리고 씻으라는 코로나 경고 떠올려

그를 잘 아는 동료에게 “그 사람 인간성 보인다. 실망했다”고 툴툴거리니 동료가 “진짜로 못 알아봤을 수 있어요. 얼굴의 3분의 2를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있잖아요”라고 말한다. 아뿔싸! 내가 오해했을 수 있겠다 싶다. 두 눈과 미간을 보고 범인의 얼굴을 식별하는 형사가 아닌 이상 일반인들이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두 눈만 보여주면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된 삶을 살고 있다. 집안을 제외하고는 어디에서나 커다란 마스크를 벗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몇 달의 집콕생활로 불어난 몸을 확연히 느끼며 얼마 전 스포츠센터에 등록했다. 몇 달간 영업을 하지 못했고 최근에야 다시 문을 연 스포츠시설들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입장하기 전 매번 발열검사와 몸상태 설문, 연락처를 꼭 작성했고, 운동하는내내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호흡이 곤란해질 정도로 숨이 차 오르지만, 마스크를 잠시라도 벗을 수 없었다.

운동을 시작한 지 이제 보름이 지났지만, 나는 우리 담당 선생님의 얼굴을 모른다. 마스크로 가린 채 매번 만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목소리에 잘 단련된 몸을 가진 선생님의 얼굴이 궁금하다. 아마도 선생님 역시 나를 1대1 트레이닝으로 10번이나 만났지만, 밖에서 마스크를 벗은 채 만난다면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

이태원사태로 코로나 위기가 다시 심각해졌을 때,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이런 말을 했다. “코로나19는 정말 잔인한 바이러스입니다. 내가 감염되면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큰 피해를 주며 시간이 지나 2차, 3차 감염으로 확산될 땐 공동체 전체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책임있는 국민으로서 바로 검사에 응해 주실 것을 간절히 요청드립니다.”

정 본부장의 이 말은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나의 실수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를 위험하게 하고 심지어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코로나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공포가 내가 코로나에 걸려 아프면 어쩌지가 아니라 나로 인해 우리 회사가 폐쇄돼 동료들이 일을 못하고, 가족·친구들을 내가 감염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코로나는 인간의 오만으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었고 그로 인해 바이러스가 전파된 것으로 추측한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는 인간의 자만, 오만에 대한 자연의 경고이자 신의 경고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엄근진’(엄숙 근엄 진지의 줄임말)이란다. ‘엄근진’은 꼰대의 또 다른 표현이고, 듣기 싫고 만나기 싫다는 말이다. 그래서 코로나가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 자연의 심판이라는 엄근진 모드 잔소리가 젊은 세대들에게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는 이들을 망치고 싶지 않은 건 세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본성이지 않을까. 가족, 친구, 애인을 지키기 위해서 우린 여전히 코로나가 주는 메시지를 무시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라 합니다/온갖 부끄러움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바이러스는 우리에게 이제 그만 ‘손 씻으라’고 강권합니다/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 ‘손을 씻는 것’은 그가 하던 나쁜 일을 그만 둔다는 뜻입니다/부디 이 기회를 잃지 말길’

김흥숙 시인의 시집 ‘쉿,(포스트코로나 시대적 성찰1)’에서 나온 시의 일부이다. 나는 어떤 것에서 손을 씻어야 할까. 내가 지금까지 했던 잘못은 무엇일까. 이기기 위해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왔던 그 동안의 삶에서 나를 돌아보는 것, 내가 했던 잘못을 생각하고 여기서 손을 씻는 것, 이는 역설적으로 코로나가 인간들에게 주는 기회이지 않을까.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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