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은 미국’ 불붙은 경찰 개혁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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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왼쪽 세 번째) 하원의장을 포함한 미국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 20여 명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의 ‘이맨시페이션(노예해방) 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8분 46초 동안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묵념을 올리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경찰개혁 방안 발표 기자회견 직전 ‘침묵의 무릎 꿇기’ 퍼포먼스를 가졌으며, 아프리카의 대표적 문양이 새겨진 스카프도 목에 둘렀다. 무릎을 꿇는 행위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상징이며, 8분 46초는 백인 경찰이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누른 시간이다. AP연합뉴스연합뉴스

백인 경찰의 가혹한 폭력에 희생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영면을 기원하는 마지막 추도식이 8일(현지시간) 고향인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렸다. 14일째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경찰 개혁 논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인종차별 시위 정국 이슈 부상
시장協, 경찰 개혁 작업단 발족
경찰 해체·예산 끊기 움직임도
트럼프, 색깔론 ‘바이든 때리기’
플로이드 고향서 마지막 추도식
유족들, 유엔인권위 소집 요청

■유족들, 유엔인권이사회 조사 촉구

현지 언론에 따르면 추도식은 8일 낮 12시 휴스턴의 ‘파운틴 오브 프레이즈(Fountain of Praise·찬양의 분수)’ 교회에서 6시간 동안 거행됐다. 수천 명의 시민은 이날 두 줄로 나뉘어 추도식장에 차례로 입장, 플로이드가 잠든 금빛 관을 바라보며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지난 10년간 경찰과 백인 자경단 등의 폭력에 희생된 에릭 가너, 마이클 브라운, 아머드 아버리, 트레이본 마틴 등 각종 흑인 사망사건의 유족들도 함께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플로이드 유족을 만나 애도의 뜻을 전했고,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경찰 개혁안을 담은 ‘조지 플로이드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플로이드 장례식은 유족과 일부 초청객이 참석한 가운데 9일 휴스턴에서 비공개로 진행된다. 지난달 25일 숨진 뒤 정확히 보름 만이다. 장례식 후 그의 유해는 휴스턴 외곽 메모리얼 가든 묘지에 안장된다.

한편 플로이드의 유족들과 인권단체들은 이날 미국에서 발생한 각종 인종 차별과 경찰 폭력 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유엔에 촉구했다.

플로이드의 아들 퀸시 메이슨 플로이드와 플로이드의 동생 필로니즈 플로이드는 이날 전 세계 인권단체들과 함께 이 같은 내용을 담아 작성한 연대 서한을 발표했다고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서한에는 미국시민자유연합(ACLU), 국제인권연맹(FIDH), 세계고문방지기구(OMCT) 등 66개국 656개 인권단체가 동참했다.

이들은 유엔인권이사회(UNHRC) 소속 47개 회원국에 발송한 서한에서 인권이사회 긴급회의 소집, 조지 플로이드를 비롯한 미국 경찰의 폭력에 희생된 흑인 사망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요청했다. 플로이드 유족과 인권단체들은 서한에서 “미국 경찰의 흑인 살해와 과도한 무력 사용은 국제인권조약 위반”이라며 “전 세계 사람들과 유엔 지도자들이 플로이드의 외침에 응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산 삭감 등 경찰 개혁 논쟁 본격화

미국시장협의회(USCM)도 이날 경찰 폭력과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룰 새로운 실무 작업단을 발족했다고 CNN 방송이 보도했다. 시카고와 탬파, 신시내티 등 3개 도시 시장이 이끌 이 실무 작업단은 경찰의 치안 유지 관행과 관련해 구체적인 권고안 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장협의회 회장인 브라이언 바넷 미시간주 로체스터힐스 시장은 “시장들이 이 노력을 이끌 것이며,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구조적 인종 차별을 철폐할 것을 약속한다”면서 “흑인들은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너무 오랫동안 평등과 정의의 약속을 거부당해 왔고, 이제는 종식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칸소 주지사 애사 허친슨도 경찰 훈련과 기준 등을 다룰 태스크포스에 관해 9일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발생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시의회가 경찰에 예산 지원을 중단하고 경찰을 해체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범죄 단속과 치안 유지를 담당하는 경찰을 해체하자는 급진적인 주장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당장 미니애폴리스 시장도 경찰 전면 해체에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제이컵 프라이 미니애폴리스 시장은 이날 ABC 뉴스에 출연해 경찰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구조적 개혁에 찬성한다면서도 전면 해체에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시위 사태 국면에서 화두로 부상한 ‘경찰예산 끊어라(Defund the police)’ 움직임에 대해 극좌파가 주도하는 ‘경찰 폐지론’으로 규정, 연일 이념 대결로 몰아가는 모양새이다. 특히 이 운동과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연결시켜 ‘바이든 때리기’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한편으로 ‘법과 질서’ 수호론을 전면에 내세워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경찰 등 법 집행관들과 간담회를 열어 “예산 삭감과 경찰 해체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트윗으로는 “급진적인 좌파 민주당은 경찰 예산을 끊어 버리고 경찰을 해체하려고 한다”며 민주당을 표적으로 삼기도 했다.

애틀랜타 시장인 케이샤 랜스 보텀스도 “경찰에 대한 예산 지원 중단과 해체는 애틀랜타의 해법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이것(경찰예산 중단)이 선의를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한 무기가 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지역사회를 위한 더 나은 지원 서비스를 원한다”다고 말했다

휴스턴 경찰서장인 아트 아세베도도 CNN에 출연해 “경찰 개혁의 방편으로 예산 지원을 중단하라는 요구는 잘못된 것으로 오히려 혼란을 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플로이드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된 목 조르기를 경찰관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처방을 내놓고 있다. 미니애폴리스가 미네소타 주 정부와 경찰관의 목 조르기를 금지하기로 합의했고, 캘리포니아 주 경찰과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보안관도 목 조르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일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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