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정치인의 소신과 함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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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세계 최다의 코로나19 희생자에다 인종차별 항의 시위로 어수선한 미국에 최근 시위 진압 문제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이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의 행보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필요하다면 시위 시민을 상대로 군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하자, 에스퍼 국방장관은 브리핑을 자청해 “법 집행에 병력을 동원하는 선택지는 마지막 수단으로만, 가장 시급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만 사용돼야 한다”며 대놓고 반대했다.

다혈질인 트럼프 대통령의 기분이 좋았을 리 없었을 것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국방장관이 그럼에도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은 자신의 소신에 더 충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부에서 경질설도 나왔지만, 이어지는 조치는 없었다. 이를 보면서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금 전 의원 징계 정치권에 소신 논란
미 국방장관의 대통령 반기 대비돼

자유로운 의견 표현, 현대 덕목 꼽혀
거대 여당은 함구령에 일사불란함

민주주의 성숙 위해 내부 비판 장려
이견 막으면 공동체 사회 길 잃을 것

에스퍼 장관의 사례는 최근 우리 정치권에 불거졌던 ‘금태섭 전 의원 징계’ 사건과 자연스레 대비된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이는 지난해 국회 본회의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법안 표결 과정에서 금 전 의원이 당론을 어기고 ‘기권표’를 던진 게 발단이다. 더불어민주당은 6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를 문제 삼아 ‘경고 징계’ 처분하고, 갑론을박이 그치지 않자 당내 함구령마저 내렸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에스퍼 국방장관과 국민의 선택으로 공직을 맡은 금 전 의원의 사례가 같은 무게감으로 취급될 수는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외양을 걸친 우리 정치 풍토가 안으로는 여전히 비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금 전 의원의 기권표 행위에 대해서는 대체로 헌법(46조 2항)에 규정된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조항을 들어 자율성을 옹호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헌법 해석이 아니다. 논란이 불거진 후 더불어민주당의 극소수 전·현직 의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징계 결정을 내린 윤리심판원이 당내 독립 기구라는 이유를 들며 침묵 뒤에 숨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배경에 이해찬 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려 입단속을 했다는 얘기마저 나오면서 더 큰 후폭풍을 낳았다. 함구령 자체도 놀라운데, 이를 좇아 개개인이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의 다른 목소리가 일시에 쑥 들어간 것은 더 놀라웠다.

자유로운 토론이나 의견 개진은 국회나 정당 같은 정치 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적인 소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요청되는 중요한 덕목으로 꼽힌다. 한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를 알 수 있는 척도인 셈이다. 민주주의는 제도적이고 형식적인 단계를 지나 의사결정 등 내부 논의 과정에 실질적으로 접목될 때 성숙 단계로 진입한다고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지도부의 함구령과 구성원들의 일사불란함에서 민주주의의 온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지도부로서는 흐뭇할는지 몰라도, 외부에서 보면 경직되고 무섭기까지 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177석의 거대 여당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정치비평가의 분석대로 의석수만 놓고 볼 때 더불어민주당이 마음만 먹는다면 하지 못할 일은 없다.

그러나 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여겨 무슨 일이든지 자기 뜻대로 하다가 뒤끝이 어떻게 됐는지는 숱한 과거 사례가 차고 넘치도록 보여준다. 비극의 결말을 피하는 최선의 예방법은 결국 내부 구성원의 민주주의 체화와 실현에서 찾아야 한다. 활발한 내부 비판과 이견의 허용은 그 출발점이다.

여기엔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1987년 형식적 민주화를 이뤘지만, 우리는 아직 이 부분에서는 그리 큰 진전을 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금 전 의원도 자신의 징계 결정 이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를 언급했다. “소신 있는 정치인이 되려면, 우리 사회에서 논쟁이 되는 이슈에 대해서 용기 있게 자기 생각을 밝히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1987년 이후 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의 큰 숙제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민은 지금 177명의 의원 집단을 거느린 더불어민주당의 행보 하나하나에 눈과 귀를 집중하고 있다. 4·15 총선 직후 당 안팎에서 합창처럼 터져 나왔던 “낮은 자세, 겸손한 태도”의 빈도와 농도는 갈수록 옅어지는 느낌이다. 금 전 의원 징계와 함구령 논란은 이러한 의구심에 어떤 개연성을 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 가치에 바탕을 둔 소신은 집단의 경직성과 오류 가능성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다원화된 사회에 정당도 예외일 수는 없다. 나름대로 근거와 방향에 따른 소신이 단 한마디 함구령에 의해 갈 길을 잃는다면 우리 사회 역시 차츰 길을 잃을지 모른다.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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