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안부 / 고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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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그라는 나무

한 그루만 있었다는 듯

그 밖은

그의 밖은

두꺼운 적막이어라



꽃 피고 꽃 지는 일

그 밖은 참 심심한 봄날이어라

흰 홑청 창창한 볕에 얼굴을 대어보는데

꽃가지라면

흰 손목 두어 마디 아프게 꺾어

그 책상에서 저물도록 피어났을 터인데



핸드폰도 잠겨버린

가파른 언저리

꽃 다녀간 어제는 선몽이었고

그는 다른 바깥세상



-고명자 시집 중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린 날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아무도 내게 안부를 묻지 않고 누구의 안부도 물을 수 없어서 무덤 속 같은 적막을 느낀다. 일순간에 세상과 단절되어서 나의 내부로 내동댕이쳐진 느낌이 든다. 나의 내부라는 것이 그렇게 의존적이고 방치된 공간이었던가, 꽃 피고 지는 일 없는 봄날같이 심심하기만 하고 꽃 다녀간 어제가 선몽 같기만 할 때 책상 앞에 앉아 내가 내게 한 줄 안부를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그가 정인일 수도 있지만 아마 시인은 그날 일부러 핸드폰을 잠그고 ‘그의 밖’으로 나와 하루 종일 시를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김종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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