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사망사건 발생하니, 요청 두 달 만에 화상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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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시설 '방치된 의료공백'] (상) 실태

교정시설의 의료공백은 인권단체와 학계에서 꾸준히 지적해 온 고질적인 문제이지만, 매번 미봉책으로 덮어 두다 지난달 10일 부산구치소 입소자 사망 사건이 발생하는 등 또 다른 희생을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정대현 기자 jhyun@

“어떤 약이든 다 똑같다. 두통이나 감기나 똑같은 약이 나오는데, 그냥 진통제를 주는 것 같다.”

“새벽에 자다 이불에 물 설사를 봤다. 설사가 심했는데, 해줄 게 없으니 그냥 참으라고 하더라. 진료는커녕 약도 안 줬다.”

2017년 국가인권위가 공개한 ‘구금시설 수용자 건강권 실태조사’ 보고서에 나온 재소자 증언이다. 지난달 10일 부산구치소 입소자 사망 사건(부산일보 5월 20일 자 2면 등 보도)이 발생하면서 교정시설의 의료공백 문제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심각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의료공백은 인권단체와 학계에서 꾸준히 지적해 온 고질적인 문제이지만, 매번 미봉책으로 덮어 두다 결국 또 다른 희생을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인권위, 2017년 건강권 실태조사
2018년부터 개선 권고했지만
지난해 9월 겨우 개선안 도출
열악한 의료처우 해소엔 역부족
주말·야간 여전히 ‘진료 사각’



■교정시설 내 의료서비스 실태

2000년 전후로부터 교정시설 의료공백에 대한 연구가 다양한 형태로 발표되고 있다. 2017년 인권위의 ‘구금시설 수용자 건강권 실태조사’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당시 인권위는 10개 교정시설의 1057명의 수용자를 대상으로 설문 및 심층 면접 등을 벌였으며, 이 보고서를 토대로 “수용자들이 건강권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달성되어야 할 의료서비스의 접근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고, 건강결정요인 측면에서 매우 불평등한 조건에 처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수용자 중 37.4%가 몸이 아파도 의무과 방문과 진료가 어렵다고 답했다. 특히 주말이나 야간 응급상황 시 의료진 진료를 받은 경우는 31.8%에 불과했다. 또 응급사항이어도 하루를 넘겨 진료를 받는 경우가 60.9%였다. 1일 이상 3일 이내에 진료가 이뤄진 경우가 34.8%, 일주일을 넘긴 경우도 11.6%였다. 제때 진료를 받기도 쉽지 않지만, 주말이나 야간에는 외관상 웬만큼 심각한 증세가 없으면 진료받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의료공백의 대표적인 분야인 정신과 진료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다. 전체 조사대상 수용자 중 16.6%가 정신과 치료를 희망했지만, 이 중 33.1%는 어떤 진료도 받지 못했다고 답했고, 38.1%는 너무 늦게 진료가 이뤄진다고 답했다.

보고서엔 “입소 뒤 공황장애 등이 심해졌다” “뇌진탕 뒤 지속해서 쓰려졌는데, 진료 신청 뒤 며칠 만에 의사를 만났다” “임플란트 치아가 빠져 식사도 못했는데, 3주 동안 약이나 처지를 받지 못했다” “화상진료를 신청했는데, 다 낫고 난 뒤인 3개월 만에 진료가 가능해졌다”는 등의 증언도 실려 있다.

■죽음 부른 안일함

국가인권위는 실태조사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2018년 9월 법무부에 의료공백 등에 대한 정책개선을 권고했다. 권고안엔 △의무관 진료면담까지 소요시간 단축 △의무관 충원·유지 및 적절한 근로조건 개선 △야간·공휴일 등 의료공백 최소화 및 응급 당직 의사제도 도입 △정신질환 수용자 진료 내실화 등이 담겼다. 이에 법무부는 두 차례 개선안을 제출했지만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려됐고, 지난해 9월에야 3차 개선안이 수용됐다. 3차 개선안엔 의무관의 순회진료를 강화하고, 55명의 공중보건의를 91명으로 확대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3차 개선안으로 의료공백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큰 이견은 없다. 실제로 공황장애를 앓는 신입재소자가 장기간 보호장비에 묶여 있다 숨진 부산구치소 사망사건의 경우 정신질환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주말 의료진 공백, 응급상황 시 늦은 대처 등이 맞물려 빚어졌다. 이미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지적된 사안들이 그대로 재연된 셈이다.

부산구치소 사망 사건 뒤 모 교정시설 재소자는 “정신과 진료를 요청했는데, 사망사고가 발생하니 그제야 2달 만에 화상진료를 시켜 줬다”며 “어떤 처방도 없었고, 언제일지 모를 다음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며, 실제 현장에선 체감할 수 있는 의료공백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증언했다.

천주교인권인위회 강성준 활동가는 “교정시설 의료공백은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고, 개선 정도도 너무 느리다”며 “교정시설 내 국민들이 적정한 수준의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느냐는 그 나라의 인권 수준을 보여 주는 척도”라고 지적했다. 김백상·이우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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