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플로이드의 8분 4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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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인종차별과 경찰폭력에 항의하며 행진하는 시위대 속에서 한 어린이가 ‘인종차별을 끝내라’는 구호가 적힌 손 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지 플로이드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그는 저항 운동의 주춧돌이 됐다.” 미국 백인 경찰의 가혹한 폭력에 희생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9일(현지시간) 46년의 생을 마감하고 고향 텍사스주 휴스턴에 잠들었다.

플로이드, 고향 휴스턴서 영면
미 전역·전 세계 연대 시위 촉발
백인 비롯 일반 시민 대거 참여
“플로이드는 저항 운동 주춧돌”
9일 ‘조지 플로이드의 날’ 선포
트럼프,끝내 플로이드 언급 안 해

■장례식 생중계, 전 세계 지켜봐

플로이드 장례식은 이날 휴스턴 ‘파운틴 오브 프레이즈’ 교회에서 유족과 조문객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지난달 25일 미국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에 참혹하게 숨진 뒤로 정확히 보름 만이다. 순백의 옷을 차려입은 유족과 검은색 정장의 조문객은 4시간 동안 진행된 장례식에서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복음 성가를 따라 부르며 플로이드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장례식장 무대 옆에는 천사의 날개를 단 플로이드의 초상화가 걸렸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장례식장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플로이드의 딸 지아나를 거명하면서 “아빠가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인종적 정의를 실현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장례식은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됐고, 전 세계 시민들이 지켜봤다. AP통신은 "조지 플로이드는 전 세계에 변화의 힘을 일으킨 '빅(Big) 플로이드'가 됐다"고 보도했다. 일부 연사는 플로이드가 촉발한 전 세계적인 인종차별 항의 시위를 언급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민권운동가 앨 샤프턴 목사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저 높은 곳의 사악함”이라고 직격탄을 날리면서 “플로이드는 저항 운동의 주춧돌이 됐다”고 평가했다.

장례식 후 플로이드가 잠든 금빛 관은 한 쌍의 백마가 이끄는 하얀 색 마차에 실려 1마일(약 1.6㎞)가량의 거리를 움직였으며, 마차가 지나가자 길가에 늘어선 시민들은 플로이드의 이름을 연호했다. 시민들은 ‘숨 쉴 수 없다’를 새긴 셔츠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문구가 들어간 마스크 등을 착용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휴스턴시는 플로이드가 영면에 들어간 날을 기념, 6월 9일을 ‘조지 플로이드의 날’로 선포했다.

■충격적 영상·팬데믹·대선 등 증폭

미국 백인 경찰의 폭력에 희생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킨 이유에 대한 분석도 나오고 있다. 플로이드 사건 전에도 타미르 라이스, 마이클 브라운, 에릭 가너 등 앞서 희생당한 흑인들과 이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지만 이번에는 미국 전역에서 연대 시위가 이어졌다.

BBC방송은 9일 그 첫 번째 이유로 플로이드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영상을 꼽았다. 경찰은 플로이드가 “숨을 쉴 수 없다”고 계속해서 호소하는데도 약 9분간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렀고, 끝내 그가 의식을 잃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촬영됐다.

뉴욕대 인권활동가 프랭크 로버츠는 “(영상이 없던)이전 사건에서는 관점의 차이가 있었다면, 이번엔 명백한 불의의 행위였으며, 사람들은 플로이드가 비무장 상태에서 제압된 것을 봤다”고 설명했다. 또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과 이에 따른 높은 실업률도 시위 확산에 불을 지폈다. 로버츠는 “플로이드 사건이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생활이 급변하는 혼란스러운 시점에 발생했다”면서 이동제한령이 내려지자 시민들이 꼼짝없이 집 안에서 TV 뉴스를 시청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또 실업률이 급증하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BBC는 미국의 흑인 사회가 더 절박한 심정으로 플로이드 사건에 집중했다고도 풀이했다. 올해만 해도 이미 수차례 흑인의 무고한 죽음이 반복됐고, 플로이드의 죽음을 기리는 시위에서도 앞선 피해자들의 이름이 등장했다. 특히 올해가 대선이 열리는 해라는 점에서 정치적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시위가 더욱 확대됐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과거 시위와 달리 시위대의 인종적 구성도 다양해졌다. 아프리카계 흑인이 아닌 시민들이 대거 시위에 참석했고, 특히 인종 차별 문제에 있어 한발짝 뒤에 서 있던 백인들도 운동의 새로운 주축으로 참여하려는 의지가 돋보인 과정이었다.

BBC는 시위가 시작된 이후 곳곳에서 포착된 경찰들의 과도한 진압 행위가 오히려 시위를 확대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하고 교회로 향한 사건이나 시위 취재에 나선 언론인들을 겨냥한 최루탄과 고무탄 공격이 더 많은 시민의 참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이드 장례식이 생중계되던 이날 오후, 트윗을 통해 흑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참모총장에 오른 찰스 브라운 미 공군참모총장 지명자의 상원 인준 소식을 알리며 등 돌린 흑인 민심에 대한 구애에 나서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는 끝내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트윗을 올리지 않았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일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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