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67)물성에 감성 담은 김원의 ‘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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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춘 김원(巴春 金原, 1921-2009)은 함경남도 정평에서 태어났다. 1947년 고향을 떠나 서울을 거쳐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부산으로 피란을 왔다. 부산에 정착한 후 계속 지역에서 미술활동을 이어 간 ‘부산 현대미술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진짜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점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말은 함경도를 떠날 때 김원의 부친이 들려주신 말씀이다. 작가 활동을 하면서 그 조언을 늘 가슴 깊이 품고 살았다. 김원은 작품을 그리고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반추의 과정을 끊임없이 이어 가며 자신이 나아갈 작업 방향에 대해 고민했다.

50년대 구상작업에서 과감한 생략법과 강한 붓터치를 이용해 추상성을 더하고, 60년대에는 구상표현의 보수적 형식을 벗어나기 위해 더 다양하고 과감한 조형적 작업을 시도했다. 추상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이며 팝아트 성향의 작품들도 볼 수 있다. 문살이나 방문 틀 같은 오브제를 작품에 도입하는 혼합재료 사용 방식은 그의 작품 성향을 주도적으로 제시해 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소개하는 작품 ‘사주’는 당시 부산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운명감정상담소의 간판을 그린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소재이다. 광목에다 수상, 관상, 골상 등 글자를 천에 적고 벽이나 문에다 못으로 고정시켜 날리지 않도록 실물인 돌을 귀퉁이에 줄로 매달아 구상표현과 오브제 작업의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한국전쟁 종전 이후 근대화의 물결은 일고 있었지만 여전히 삶의 팍팍함 속에 의지할 곳 없는 자기 운명의 빛을 점집에서 찾고자 소망하는 사람들의 본성을 내포한 작품이다.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하는 토속적인 풍경이지만 서구 미술의 앵포르멜에서 표면화된 거친 재료의 표현과도 맥을 같이 한다.

김원은 일찍이 물성이 갖는 개념적·물질적 느낌을 인지하고 사물 그대로를 사용해 사실을 표현하려 했다. 이는 인간 삶의 구체적인 현장을 담아 현실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9월 8일까지 열리는 ‘60~70년대 부산미술-끝이 없는 시작’전에서 그의 작품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정종효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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