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관의 남북 시선] 전단 살포로 어지럽혀지는 ‘6·15’ 2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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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며칠 후면 ‘6·15 남북 공동선언’ 20주년이다. 남북 정상이 최초로 만나 합의한 선언은 그동안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변화시키는 중대한 출발점이 되었다. 국제 사회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같은 해 12월 영국이 그리고 이듬해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등 서구 유럽 국가들이 북한과 수교를 맺었고, 영국은 곧바로 평양에 대사관을 설치했다.

6·15는 북한이 서방 세계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해 가을에 호주 시드니올림픽에서 최초로 남북한이 동시 입장하자 많은 관중이 기립 박수를 보냈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남북관계 중대한 전환점 6·15 선언
20년 지났지만, 여전히 한반도 냉랭

최근 미·중 갈등 등 태평양 질서 흔들
남북한 문제 해결, 위기 제거 실마리

이미 맺어진 약속 잘 지키는 것 중요
전단 살포도 역지사지 측면 생각을


그때만 해도 한반도에 새로운 시대가 곧 열릴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 국민 중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각도 적지 않았다. 북한의 생존 방식도 남측과 주변국의 호응을 얻는 데 한계가 있었고, 국제사회의 우려 또한 장애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20년이 지났지만, 남북 관계는 묶인 실타래를 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남북문제를 풀어내는 것은 남북한과 국제환경 요인이 원만하게 결합할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풀어내려는 힘도 존재하지만, 방해하려는 힘도 역시 존재한다. 북한이 ‘선량한 국가’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세력들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이 걸려 있고 국제 질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변수는 수교하지 않은 나라들의 움직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6·15의 긍정적인 여파로 북한이 수교한 나라는 모두 160개국에 이른다. 북한이 수교하지 않은 몇 나라 중에 우리가 이름을 알 수 있는 나라는 중동 몇 나라를 제외하면 바로 미국과 일본뿐이다.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수교하지 않았으나, 이미 1984년부터 파리에 북한대표부를 설치하고 있어 큰 변수라고 보기 어렵다. 일본은 안보 동맹국인 미국의 대북한 행보에 속도를 맞출 것이 자명하다. 다시 말해서 북한이 미국이 수교를 맺게 되면 태평양 질서에 큰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는 뜻이다.

최근 태평양 질서를 두고 2500년 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전쟁사를 썼던 인물을 언급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처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앨리슨 교수가 그의 유명한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지적했듯이 이 ‘함정’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사 충돌 가능성을 키우고 있어서,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의 갈등 구조를 이해하고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태평양에 남아 있는 유일한 냉전 구조라 할 수 있는 남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이 지역의 심각한 위기를 제거하는 방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 출발점이 6·15 남북 공동선언과 이어지는 남북 정상 간 합의들이다. 그리고 북미 간 정상회담이 열린 것은 이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단히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세력들은 끊임없이 갈등과 대결 국면으로 몰고 가기를 원한다. 그것이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고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루어진 결실을 잘 지켜 나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그리고 우리의 동맹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약속을 위반하는 것은 화약고인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을 위험에 노출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단순하게 보기 어려운 것이 바로 탈북민들의 전단 살포 사건이다. 이미 2015년 대법원은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표현의 자유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면…(중략) 제지 행위를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입장을 바꿔서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 만일 북한이 남쪽으로 전단을 뿌려서 우리 사회를 지속해서 비판한다면 과연 유쾌할까? 더구나 2년 전 남북 정상회담에서 전단 살포를 금지하도록 합의했다.

탈북민들이 고난을 이겨 내고 우리 사회로 와서 정착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 따뜻한 동포애로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같은 국민의 일원으로 살아가겠지만, 그들 중 일부는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역할을 할 때 우리 사회는 어떤 자세를 보여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자유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과정에서 순기능을 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그들의 순기능도, 역기능도 모두 우리들이 만든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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