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옳은 공항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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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경제부 산업팀장

지금으로부터 2년 4개월 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이 완성됐다.

으리으리한 기존 제1여객터미널에 맞먹는 규모다. 이로써 인천공항은 하루 1000대 이상의 항공기와 연간 2300만 명의 항공승객을 더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터미널이 새롭게 문을 연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해 11월.

이 시설을 더 크게 확장하기 위한 기공식이 열렸다. 연간 2900만 명을 더 수용할 수 있는 터미널 확장 공사였다.

여기에다 활주로 신설 공사도 함께 시작됐다. 기존 3개 활주로에 이은 3.75km 길이의 인천공항 제4활주로다.

인천공항 ‘제5터미널’ 신설, 눈부신 비상
동남권에선 “공항 확충 너무 어렵다”
국무총리실 검증위 발표 임박해 여론 결집
김해공항 확장안 보완책 제시는 기만행위

곧이어 지난달 초 인천공항 제5활주로 소식이 다시 들려왔다. 제4활주로가 착공된 지 5개월 남짓 지난 시점에 제5활주로 건설 방안이 확정됐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불과 2년여 사이 인천공항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이다.

세계적 수준의 거대한 여객터미널이 새롭게 문을 열고, 곧이어 그 터미널을 배 이상 크게 확장하는 공사가 시작되고, 대형 활주로 1개를 신설하는 공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또 다른 대형 활주로 1개 신설 계획이 최종 확정됐다.

사업비만 따져도 터미널 신설에 4조 6511억 원이 들어갔고, 터미널 확장과 활주로 추가 건설에 다시 4조 8000억 원이 투입된다. 제5활주로 사업비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과연 동북아 허브공항 다운 화려한 변모다.

부산·울산·경남으로 눈을 돌려보자.

“존경하는 대통령님, 그리고 국무총리님.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을 향한 부·울·경 주민들의 간절한 외침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사)동남권관문공항추진위원회가 지난 8일 발표한 ‘부·울·경 지역주민 호소문’의 일부다. 지역 시민사회계와 경제계가 뭉쳐 결성한 단체의 애달픈 호소다. 오죽 답답하면 ‘대통령님’과 ‘국무총리님’을 찾았을까.

“수도권에선 일사천리인 신공항 건설과 확충이 부산에선 왜 이리 어렵느냐”고 요즘 모두가 야단들이다. ‘제5활주로’ 소식 이후 지역 민심은 더 흉흉해졌다. 지역에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들이 수도권에선 너무도 당연한 듯 척척 진행되는 까닭이다. 저자세로 ‘귀 기울여 달라’고 굽실거려야 하는 지역민의 애처로운 마음을 ‘수도권공화국’에 속한 ‘1등 국민’은 절대 헤아릴 수 없다.

국무총리실 검증위원회 결론이 임박했다고 한다. 이달 안에 검증 결과가 발표될 거라는 소식에 지역 여론이 다시 결집되는 분위기다.

부산시와 울산시·경상남도와 지역민들은 이미 국토교통부가 확정한 방안을 거부했다. 국토부의 김해공항 확장안이 동남권 관문공항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울·경은 지금의 김해공항에 활주로를 하나 더 놓아 계속 이용하라는 방안을 폐기하라고 정부에 공식 요구했다. 안전과 소음, 환경, 확장성 등의 분야에서 정밀한 기술적 검증 과정을 거쳐 내린 결론이다. 산악장애물 검토와 신설 활주로 길이 산출 등의 과정에서 관련 법률을 어긴 불법·탈법 공항확장계획이라는 사실도 여러 차례 확인됐다. 근거 없이 떼를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총리실 검증위는 4개 분야 14개 쟁점에 대한 기술적 검증만을 약속했다. 기술적 측면에서 관문공항에 합당한지 여부만 검토해 결과를 내놓으면 된다. 결과에 따른 대안을 내놓을 권한은 없다. 부·울·경은 검증위에 보완책을 요구한 적이 없다.

김해공항 확장안이 안전, 소음, 환경 등 한 분야에라도 부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화살이 국토부로 향할 수 있다. 이 사태를 막기 위해 이른바 ‘항공마피아’ 세력이 보완책 제시로 위기를 돌파하려 할 수도 있다. 부·울·경이 경계하는 시나리오다.

안전 등 일부 항목에서라도 엉터리라는 결론이 나오면 확장안을 전면 폐기하는 게 마땅하다. 그 다음 대안은 부·울·경과 정부, 청와대 등이 다시 고민할 일이다.

동남권 신공항 논의는 129명의 희생에서 비롯됐다. 2002년 김해공항 앞 돗대산 충돌사고로 지역에 산다는 잘못밖에 없는 승객들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동북아 항공허브인 인천공항은 국민의 자존심이 걸려 있지만, 동남권 신공항엔 지역민의 목숨이 달렸다. 부·울·경 지역에 옳은 공항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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