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관 모자라니 ‘1분 진료’ 예사… 수용자 의료 서비스 수준이 인권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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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시설 '방치된 의료공백'] (하) 원인과 대책

교정시설 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해선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다. 부산구치소 전경. 정대현 기자 jhyun@

교정시설 의료공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수십 년째 이어져 오고 있지만, 현장에서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교정시설 의료공백과 낮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는 근본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의료진 상황에서 기인한다. 빈약한 재정 탓에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교정시설에서 일하겠다고 나서는 의사를 찾기 힘들다.

열악한 처우에 일할 의사 부족
‘수용자 의료권’ 인식 전환 필요
“의무관 독립성·자율성 보장을”

■1~2분 안에 끝내야 하는 진료

10일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 교정시설의 의무관 정원은 117명이지만, 현재 근무 의무관은 93명이다. 수용자 규모 등을 고려하면 각 교정시설에 할당된 의무관 정원 자체가 너무 적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실제론 이 정원마저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교정 당국은 의무관 부족을 공중보건의로 상당 부분 채우고 있다. 교정시설 내 공중보건의는 2018년 55명에서 올해 91명으로 늘었다. 2018년 국가인권위가 법무부에 교정시설 내 의료공백 등에 대한 정책개선을 권고한 뒤 법무부가 내놓은 대책 중 하나가 공중보건의 확충이었다.

의무관과 공중보건의를 합쳐도 의료진 부족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1년간 교정시설 내 진료건수는 918만 1902건이었으며, 교정시설 의무관(89명)과 공중보건의(71명)는 모두 160명이었다. 결국 이들은 1인당 하루 157건 진료한 셈이다. 통상 일반병원의 경우 적정 하루 진료건수가 60~75건 정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정시설 내에서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기대하는 건 애초 불가능한 상황이다. 의료진의 처리건수가 워낙에 많다 보니 수용자 한 명을 살피는 데 1~2분을 넘기기도 어렵고, 심각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다른 진료는 모두 마비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법무부 역시 의무관 충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올해 상반기에만 이미 22명의 의무관 채용을 목표로 3차례 채용공고를 냈다. 하지만 3차례 공고에도 선발된 의무관은 4명에 그쳤다. 지원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무관의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교정시설에서 일하겠다고 나서는 의사가 없는 것이다.

의무관은 4~5급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임금 역시 기본적으로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라 산정된다. 전국 의료기관 의사 평균 연봉이 1억 5000만 원 안팎으로 조사되는 것에 비하면, 교정시설 의사들의 연봉은 이들의 절반 정도 수준인 셈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교정시설 내 의사들은 사명감으로 상당한 격무를 버티고 있다. 뻔히 사정을 아는데 야간이나 주말 근무를 강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료비 투자 없이 개선 없다

의료진 처우를 포함해 교정시설 내 의료서비스 개선은 예산 확보와 직결된 문제이다. 지난해 집행된 교정시설 의료비(외부진료 포함)는 250억 6900만 원 상당이었으며, 1일 평균 수용인원은 5만 4624명이다. 수용자 1인당 연 의료비로 평균 45만 4160만 원 을 쓴 셈이다. 이는 국민 1인당 연평균 의료비 160만 원 상당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그만큼 수용자들은 낮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법무부는 매년 교정시설 의료비를 늘리고 있지만, ‘교도소나 구치소 내 의료권 제한’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관념이 퍼져 있다 보니 번번이 재정 관련 부서들의 벽에 부딪혀 인상률은 소폭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유엔은 ‘유엔 수용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 제24조를 통해 “수용자에 대한 의료서비스 제공은 국가의 의무이며, 수용자는 지역사회에서 제공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보건 및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결국 수용자들의 의료비가 국민의 의료비 수준에 근접하지 않으면, 국제적으로 인권 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셈이다.

인권단체들은 의무관의 지위 향상 필요성도 지적하고 있다. 천주교인권인원회 강성준 활동가는 “교정시설 의료공백은 의료인력 문제가 제일 크다. 일단 전문직인 의사를 유인하고, 외부 진료를 강화하는 등의 보조책도 필요하다”며 “의무관의 권한 강화도 필수 요소다. 의사도 교정시설 직원이지만, 의료 관련 판단에서만큼은 완전한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백상·이우영 기자 k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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