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종사가 바라본 동남권 신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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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조 에미레이트항공 A380 조종사

동남권 신공항 이슈가 뜨겁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된 동남권 신공항이 2020년이 된 지금에도 회자하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가 또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전적 의미의 공항은 상업용 항공기가 이착륙을 할 수 있는 설비가 구비되어 있는 비행장이다. 하지만 국가적 의미의 공항은 그 사전적 의미를 넘어 하나의 국가를 세계로 연결하는 대동맥이다.

그동안 비행하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많은 공항들을 보고 경험하였다. 그 나라의 대표 공항이 가진 상징성은 단순한 건축물이라는 의미를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김해공항은 조종사들이 비행하는데 반가운 공항은 절대 아니다. 비행기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이륙과 착륙의 방향이 정해지는데 비행기에 필요한 바람은 맞바람(Headwind), 즉 정풍이 불어야 한다.

김해공항은 활주로가 남북으로 뻗어 있고 다른 공항들에 비해 비교적 바람의 방향이 일정하게 남풍 또는 북풍이 분다. 풍향적인 측면에서는 비행하기에 적합한 기상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상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면 비행기가 북쪽을 향해서 이륙하는데 원하지 않는 장애물이 있다. 신어산과 돗대산의 산악지역이 그것이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해서는 먼 거리에서부터 속도와 고도를 천천히 조금씩 낮춰서 착륙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일종의 비행 공식이다.

그런데 김해공항에서는 이러한 일반적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궁여지책으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게 되면 비행기는 낮은 고도로 활주로와 북쪽 산악지대 사이에서 급선회하여 착륙해야 한다. 일반적이지 않다.

김해공항과 비슷한 고민을 한 공항이 있었는데 바로 홍콩의 카이탁공항이었다. 홍콩의 중심지역에 있는 카이탁공항은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진 홍콩의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서 일반적인 이착륙이 불가능했다.

조종사들은 홍콩의 가파른 산악지형과 빌딩 숲을 스치듯 지나 곡예 비행에 가까운 방식으로 착륙했다. 홍콩에 익숙한 조종사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이 공항에 착륙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이와 관련된 항공기 사고들도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카이탁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중의 하나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카이탁 공항의 지형적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체 방안으로 건설된 곳이 바로 지금 홍콩 국제공항으로 사용되고 있는 첵랍콕공항이다.

홍콩은 면적이 좁고 대부분의 지역이 산악지형으로 구성되어 있어 공항을 만들어 놓을 지역이 없었다. 그래서 바다를 메워 그 위에 첵랍콕공항을 만든 것이다.

첵랍콕공항은 홍콩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다. 공항은 조종사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이를 도와주고 최대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여유(safety margin)를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김해공항은 지형적 특징 때문에 비행안전에 대한 여유가 너무 작다.

공항은 한번 만들어지면 다시 바꾸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공항의 ‘비행 안전’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조종사의 눈으로 보았을 때 승객의 안전을 최선으로 그리고 최고의 목표로서 하는 신공항이 되어야 한다.

비행안전이 전제되지 않고 그 외의 목적에 집착된 공항은 그들만의 공허한 희망 사항일 뿐이다.

동남권 신공항은 비행기가 태평양을 건너기 전 마지막 공항 그리고 태평양을 건넌 비행기의 첫 공항이다. 비행 운항 상의 중요성과 경제적 잠재력은 인천공항을 능가한다.

지금 이 순간 홍콩의 카이탁공항과 첵랍콕공항이 우리들에게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힌트를 귀띔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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