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인간적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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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병리적 차원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의 출발은 미국이었다. 스페인 독감 시절 전염병의 대유행과 전파를 막기 위해 미국 일부 도시에서 예정되었던 퍼레이드를 중지하고, 학교와 문화 그리고 종교 관련 모임 자제를 요청하면서 이 사회적 거리두기는 표면화되었다.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했던 도시들은 그렇지 않은 도시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전염률과 사망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회 운동의 발원지가 무색할 만한 일들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생각한다면, 미국은 선진국의 풍모를 전혀 내보이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점은 그런데도 미국 시민들은 오히려 사회적 거리두기의 무조건적 해제를 완강하게 주장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많은 이들은 경제 봉쇄 완화를 주장하며, 팬더믹의 상황을 부정하는 반응까지 내보이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는 무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에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건까지 겹쳐지고 말았다.

미국, 사회적 거리두기에 미온적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까지 발생
경찰관과 시민 사이 최소한 거리 훼손
미국 사회 내부의 신뢰 무참히 붕괴

거리 조절 실패 땐 사회적 위험 커져
코로나19의 경고 새겨들어야


인간은 필연적으로 모여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러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 내부에는 지켜야 할 필연적인 거리(distance)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 거리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영역이 보장되는 거리여야 한다. 사실 이러한 거리는 병리학적 전염 이전의 문제이며, 보이지 않는 시선으로 사회 곳곳에 이미 침투해 있다. 이를 오래전부터 연구한 애드워드 홀은 이러한 거리와 공간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 바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 국가, 인종, 문화권이 유지되고 인간의 개인 생활이 만들어진다는 놀라운 통찰력을 남긴 바 있다. 그러니까 인간은 상대와의 거리를 조정하면서 살아왔고, 그 결과 독자적인 사회와 개성적인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이때의 거리는 일차적으로는 물리적 거리이지만, 동시에 심리적 거리이기도 하고, 현재는 병리학적 거리가 강하게 부각된 상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생존과 존엄 그리고 자율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라고 해야 한다. 이 거리가 무너지면 사회적 소요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경찰과 시민 사이에서 지켜야 할 거리가 무너진 사례가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조지 플로이드를 옥죄던 힘은 경찰관과 시민 사이에 존재해야 했던 최소한의 거리(생명)를 치명적으로 훼손하고 말았고, 이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미국이라는 사회 내부에 존재했던 개인들의 신뢰(합의)는 무참하게 붕괴하였다. 일부 시민들이 남의 상점에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합의를 무시되자, 시민과 약탈자의 거리를 유지하는 유리창이 파괴되었고 둘 사이에 지켜야 할 거리가 사라지고 말았다. 거리 파괴 현상은 사회 전반으로 번져나갔고, 궁극적으로 견지해야 할 사회의 근간(법과 인간의 거리)마저 위태롭게 만들어 버렸다.

사회적 위험이 격증한 것은 인간 ‘사이’의 거리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가 이 거리의 중요성을 각성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이들은 그 막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기본적 거리마저 침해하고 말았다. 안타까운 점은 이 사건을 미국 사회의 특수한 문제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홍콩과 중국이 지켜야 할 거리가 무너지고 있고, 한국과 일본이 지켜왔던 거리도 무너지고 있으며, 같은 현상이 고용주와 근로자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이 거리를 근본적으로 재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어쩌면 팬더믹에 관계없이 이 거리를 유지하고 적절하게 조율할 방법을 강구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것이 어쩌면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경고한 위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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