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잇단 위협에 청와대 NSC 대응, ‘3년 공든탑’ 무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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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남한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와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가 마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남북관계 단절’ 엄포로 우리 정부가 깊은 고심에 빠졌다. 북한이 공개적으로 대남 군사행동을 예고하면서 북한군의 무력시위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제기되자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하던 정부는 적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대북 상황 관리에 나섰다.

청와대는 14일 새벽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긴급 소집해 군사 위협까지 불사하는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청와대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회의를 연 것은 이날 0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철거와 군사행동에 나설 것을 시사한 김 부부장의 발언이 나온 지 불과 3시간여만이다.

정의용 실장 주재로 긴급회의
김여정 잇단 엄포에 자제 기류 변화
軍도 “확고한 대비 태세” 발표

北 대내·외 위기 타개용 해석
정부 치적 ‘남북평화’ 물거품 우려


청와대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 등 우리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김 부부장의 언사에 직접 대응을 삼가며 거리를 둬 왔다.

그런 청와대의 태도가 바뀐 것은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하겠다고 공언한 김 부부장의 위협적 언사를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일부도 이날 “남과 북은 남북 간 모든 합의를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한다”며 분명한 우려를 표했다. 국방부는 정경두 장관 주재로 회의를 열어 “우리 군은 모든 상황에 대비해 확고한 군사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북한군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는 별도 입장을 냈다.

군은 그동안 북한의 9·19 군사합의 파기 거론과 군 통신선 단절에도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으나 상황이 엄중함을 고려해 입장을 따로 낸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북한이 대남공세를 실제로 군사 행동에 옮기는 경우다. 국지적으로라도 무력 도발을 일으킨다면 남북 군사합의는 물거품이 되고 북·미 사이에서 해온 비핵화 중재자·촉진자 역할도 효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이 현 정부의 일관된 기조이자 최대 치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에 인내하면서 잘해 준 결과가 이것이냐’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전례 없는 보복 의지를 드러내며 한반도 정세를 최악의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대내외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표면적으로는 최고지도자를 비난한 전단내용을 문제 삼고 있지만, 그 속내는 경제·외교적 악재를 해소하기 위해 남쪽을 적으로 삼아 내부 불만을 다독거리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코앞의 대선과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북·미 협상을 외면하는 가운데서도 오히려 대북제재 수위를 더욱 높이는 형국이다. 지난달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25억 달러(한화 3조 1000억 원) 규모의 돈세탁에 관여한 혐의로 30여 명의 북한인과 중국인을 무더기 기소했다. 더욱이 북한의 후원국이자 북한 경제의 버팀목인 중국은 내치가 다급한 형국이라 기대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겉으로는 북한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계기로 중국 편들기를 하고 있지만, 중국은 미·중 갈등 속에서 홍콩 국가보안법 문제와 코로나19 때문에 북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그동안 대북제재 장기화로 수출입 통로가 대부분 막혀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해 오다시피 했는데 코로나19로 이마저도 막히면서 어려움이 가중된 것이다.

결국 북한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쌓여 온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난 2년간의 불만을 전단 살포를 계기로 폭발시키면서 한반도 정세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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