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흰여울마을 키운 상인들 ‘불법 딱지’에 주저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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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관광 명소인 흰여울문화마을 가게 업주들이 무허가 건축물 영업을 이유로 경찰에 줄소환될 위기에 처했다. 이들 업주는 그동안 흰여울문화마을을 중구 남포동과 서구 송도 등 원도심 관광 축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는데, 가뜩이나 힘든 코로나 시기에 ‘불법’ 딱지까지 떠안게 됐다.

경찰, 무허가 건축물 영업 이유
11개 업소 업주 ‘줄소환’ 예정
피난민 정착 건물 대부분 무허가
구청 “현행법상 방법 없다” 뒷짐
지난해 82만 8000명 방문 기록
부산 원도심 관광 축 붕괴 위기

그동안 흰여울문화마을을 지역 대표 관광지로 홍보하기 바빴던 영도구는 정작 주민이 줄 소환될 처지에 놓이자 “현행법상 방법이 없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 코로나로 부산 관광업이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국제관광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시가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경찰청 관광경찰대는 지난 8일 영도구 흰여울문화마을 무허가 건축물에서 영업하는 11개 업소를 단속했다. 대상 업주들은 15일부터 순차적으로 경찰에 소환돼 식품위생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받을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무허가 건축물 영업장은 코로나 방역과 위생 부문에서 지자체의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번 불시 단속에서 일부 업소 위생 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관련자의 출두를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흰여울문화마을 업주들은 “구청은 명품 관광지라고 홍보하더니, 경찰은 불법 영업이라며 단속한다. 모두 힘든 코로나 시기를 맞아 온갖 힘을 다해 관광객 유치에 노력하고 있는데, 경찰이 법만 앞세워 단속하는 것은 무분별한 처사”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흰여울문화마을에서 5년 넘게 카페를 운영 중인 한 업주는 “상권이 전혀 없던 동네가 전국적인 관광지로 떠오른 게 누구 덕이냐. 부산시와 영도구의 도시재생 사업에 협력하며 밤낮없이 노력한 상인들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수년 전부터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무허가 건축물의 ‘양성화’를 요구했지만 구청이 해결에 나서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누군가 신고하거나 단속하면 그때마다 강제이행금을 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흰여울문화마을에서 영업을 계속하지 못할 것이고, 흰여울문화마을은 자연스럽게 고사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흰여울문화마을은 한국전쟁 시절 영도에 몰린 피난민이 모여 살던 지역인 탓에 건물 대부분이 무허가 상태다. 하지만 2011년 영도구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공·폐가를 리모델링하고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등 영화 촬영지로도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부산시 ‘부산관광산업 동향분석’에 따르면 2016년 27만 5000명이던 흰여울문화마을 방문자는 지난해는 82만 8000명으로 4년 사이 3배가 늘었다. 여기에는 특색 있는 서점과 카페 등을 운영해 온 업주들의 노력도 컸다.

흰여울문화마을은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거듭났지만 불법 건축물 양성화는 언제나 뒷전에 방치돼 왔다. 영도구 관계자는 “무허가 건물을 양성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특별법이 시행돼야 한다. 하지만 2014년에 1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된 이후 추가 계획이 없다. 건물 대부분이 수십 년 전 지어진 노후 무허가 건물이라 현행 건축법에 맞춰 리모델링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를 두고 원도심 관광의 한 축이 붕괴하는 걸 막기 위해 올해 ‘국제관광거점도시’로 선정된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도구의회 신기삼 의원은 “현행법상 흰여울문화마을의 무허가 건축물 문제는 기초 지자체 행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광역 지자체인 부산시가 무허가 건물을 양성화할 수 있는 상위법 개정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배·서유리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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