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잃고 한순간에 살인용의자 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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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걸린 엄마 화자 역 배종옥

“급성 치매에 걸린 캐릭터의 인생사가 안쓰럽더라고요. 인물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마음에 담고 출발한 작품이에요.”

배우 배종옥(56)은 영화 ‘결백’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캐릭터를 향한 연민은 때론 처절한 감정을, 때론 독기 어린 눈빛을 쏟아 내게 했다. 배종옥은 극 중 기억을 잃고 한순간에 살인 용의자가 된 ‘채화자’를 연기했는데 그 모습이 꽤 파격적이다. 그는 “내가 쏟아 내는 감정이 한 여자의 안쓰러운 인생을 그럴듯하게 전하는 장치로 보이지 않길 바랐다”고 했다.

도시적인 우아한 모습 탈피
얼굴 가득한 검버섯 파격적
배역에 감정 이입할 수 있게
분장 장면도 철저히 비공개

스크린 속 배종옥은 그간 주로 선보였던 도시적이고 우아한 모습을 모두 벗어던졌다. 헝클어지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깊게 팬 주름, 얼굴 가득한 검버섯 등 인물의 외적인 모습만 봐도 그렇다. 배종옥은 “2~3시간 걸려 특수 분장을 했지만, 힘들진 않았다”며 “분장하는 동안 화자를 조금 더 이해하고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배우의 ‘아름다움’을 버리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면서 “관객에게 ‘노인 분장하고 나왔네’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나름 노력했는데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배종옥은 이번 작품을 하는 동안 자신을 철저하게 ‘캐릭터화’ 했단다. 평소 여러 작품에서 눈여겨봤던 신혜선과 연기 합을 맞췄지만, 계속해서 거리를 두려고 했다고. 그는 “저는 사전 연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혜선 씨에게는 처음에 분장한 모습도 보여 주지 않았다”며 “신혜선 씨가 ‘엄마 분장 궁금하다’며 분장실에 들어오려고 하길래 ‘오지 말라’고 소리치기도 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나중에 신혜선 씨가 촬영할 때 처음 분장한 모습을 본 게 감정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하더라”고 했다. 치매에 걸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마주한 딸과 오랜 시간 그리워한 딸을 앞에 두고도 ‘누구냐’고 묻는 엄마의 접견 장면이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당초 지난 3월 개봉을 예정했던 영화는 코로나19 사태로 두 차례 개봉을 연기한 끝에 관객을 만난다. 36년간 배우 생활을 했던 배종옥은 “코로나 발생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영화와 미디어 산업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하루라도 빨리 백신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1985년 KBS 특채 탤런트로 데뷔한 배종옥은 영화 ‘젊은 날의 초상’ ‘걸어서 하늘까지’ ‘질투는 나의 힘’ ‘반드시 잡는다’ ‘환절기’와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 ‘꽃보다 아름다워’ ‘호박꽃 순정’ ‘우아한 가’ 등에 출연해 대중을 만났다. 2010년 이후에는 연극 무대로 폭을 넓혀 연기자로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배종옥은 “어릴 때는 선배들이 왜 계속 연기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젠 조금 알 것 같다”며 “내가 앞으로 얼마나 연기를 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계속 도전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30년 넘게 배우 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연기할 때 가장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연기란 게 어떨 땐 순풍에 돛 단 듯 잘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아요. 그래서 그런지 연기가 참 재미있더라고요. 참, 다음엔 이번 작품에서 대립각을 세운 허준호 씨와 로맨스를 한번 하고 싶네요. 하하.”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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