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에 낮은 단가 강요하는 불법 하도급이 ‘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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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일터, 당신이 만듭니다] 3. 잇따르는 승강기 노동자 안전사고

2019년 3월 부산 해운대구 한 아파트에서 노후 승강기 교체 작업 도중 승강기가 추락해 인부 2명이 숨졌다. 부산일보DB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극한까지 이윤을 추구한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이윤을 짜내는 시스템은 한층 더 복잡해지고, 반대급부로 사업장의 안전 관리는 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한 영세업체, 하청업체의 몫으로 남겨진다.

사업 현장 전체를 관장하는 성숙한 안목과 안전에 대한 철학은 사라진 지 오래다. 현장의 개개인은 거대한 이윤 추구 시스템의 부품일 뿐이다. 매년 산업 현장마다 안타까운 재해가 반복되고 있지만 학습효과가 무색할 정도로 덧없는 사망 소식이 거듭 들려오는 이유다.

최근 5년 사이 40명 가까이 숨져
국내 4개 업체 ‘공동도급’ 편법 동원
최대 40% 수수료 떼고 일 떠넘겨
영세 하청업체 ‘안전 투자’ 여유 없어
매년 현장서 안타까운 재해 되풀이

지난해 3월 부산 해운대구 한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 노동자 2명이 숨졌다. 17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면서 내부에서 작업 중이던 이들이 화를 입은 것. 그리고 불과 4개월 뒤인 7월, 이번에는 동래구의 또 다른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엘리베이터 노동자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렇게 작업 중에 안전 사고로 사망한 엘리베이터 업계 노동자는 지난해에만 7명. 최근 5년 사이 40명 가까운 엘리베이터 노동자가 현장에서 꽃다운 생을 다 펴보지도 못한 채 숨을 거뒀다.

국내 엘리베이터 업계 시장규모는 연간 3조 5000억 원까지 급성장했다. 그런데도 이처럼 엘리베이터 안전 사고가 속출하는 이유는 불법 하도급이다. 원칙상 엘리베이터 유지관리는 하도급을 주는 게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20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엘리베이터 업체는 여전히 ‘공동도급’이라는 교묘한 방법으로 수수료만 뗀 뒤 일을 하청업체로 떠넘기고 있다. 이들 대형 엘리베이터가 이 과정에서 책정하는 수수료는 최대 40%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이 같은 업계 관행이 들통나며 국내 엘리베이터 업체 대표들이 지난해 국감에 줄줄이 소환 요청을 받는 등 홍역을 치렀다. 당시 국감장에서 밝혀진 이들 4개 업체의 하도급 비율은 40~50% 선. 따낸 사업의 절반을 영세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최근 부산지역에서 이어지고 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사고 역시 하청업체에게 낮은 단가를 강요하다 빚어진 사고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국감장에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부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지역 일대에 있는 업체들은 ‘도저히 우리는 그 금액에는 할 수가 없다’고 해서 다 거부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타지역에서 영세업체가 내려가서 일하다 벌어진 사고”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처럼 영세 하청업체는 저가 수주를 위해 안전비용 투자가 불가능할 정도까지의 계약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대기업의 경우 현장에 배치되면 신형 안전장구류가 지급되지만 영세 업체는 이직이 잦다는 이유로 중소제품을 떠안기거나 안전 장구류마저 본인이 구입하다록 압박하는 경우가 잦다.

노동 전문가들은 불법 하도급으로 양극화되고 있는 안전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적정 단가로 사업을 수주하게 하고 더 촘촘한 법망으로 원청 업체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 산업현장에서 벌어지는 안전사고의 절반 이상이 기본적인 안전 조치만 이루어져도 막을 수 있는 이른바 ‘재래형 사고’이기 때문이다. 무딘 칼이 되어 버린 산업안전보건법을 보완하기 위해 원외에서 거듭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그 해결책 중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업 현장에서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현장 책임자를 넘어 기업주와 경영 책임자까지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처벌 수위 역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높다.

그러나 2015년 입법 청원이 시작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대 국회 당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발의했지만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했고 지금도 표류하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숙견 상임활동가는 “지난달 노동부의 안전보건 특별감독이 이루어진 지 하루만에 노동자가 질식사한 현대중공업 사례만 봐도 정부와 관계 당국의 엄정한 감독과 지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기업도 이런 상황인데 여기서 저가로 2차, 3차 하청을 받은 중소 영세기업을 나무랄 수 있겠느냐. 모든 안전사고에 대해 법인과 사업주의 책임을 강하고 정확하게 묻는 방향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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