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범천동 철도차량정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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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조지 스티븐슨이 1825년 증기기관차를 이용해 최초로 상업용 열차 운행에 성공하면서 철도 수송의 시대를 연 이래 철도는 각국의 근대화 정도를 보여 주는 상징물이 되었다. 철도는 19세기 말부터 심화한 제국주의에 필수적인 인프라로서 20세기 접어들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초창기에는 대부분 철도 건설과 운영이 주로 민간 기업의 몫이었지만, 철도 수송의 영향력과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점차 국가가 이를 통제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철도 역사도 제국주의를 빼놓고는 시작할 수 없다. 조선 침탈을 시작한 일제가 1894년 실질적인 철도 부설권을 확보한 뒤 1899년 경인선 제물포~노량진 33.2km 구간을 개통했고, 1900년에 한강철교 완공에 뒤이어 지금의 서울역까지 연장했다. 한반도 내 본격적인 철도망 구축에 나선 일제는 1901년부터 경부선 건설에 착수해 1905년 서울~부산 초량 구간을 개통했다. 1년 전 러시아와 전쟁을 벌인 일제의 병력과 군수품 등 물자 수송 필요성이 급증하던 시점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부산 ‘범천동 철도차량정비단’의 전신이 태동하게 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부산이 한반도 내 철도의 시발·종점이 되면서 부속품 생산과 정비 시설이 필요했고, 이는 1904년 2월 1일 범천동 인근에 ‘초량기계공장’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후 1963년 9월 ‘부산공작창’, 1984년 2월 ‘부산 철도차량정비창’ 등 여러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이 시설은 100년 이상 부산 한복판에서 명맥을 유지했다. 이곳은 그래서 오랜 세월만큼이나 한국 철도의 영욕이 곳곳에 숨어 있는 상징물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범천동 철도차량정비단에 점점 압박으로 다가왔다. 부산 한복판에 위치해 원도심 발전의 장애물로 여겨지면서 오래전부터 이전 요구가 제기됐다. 도심지 내에선 ‘광활’하다고 할 만한 24만여㎡ 부지를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부산시민의 요구와 부산 발전을 위해 100년 이상 버텨 온 부지를 내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대신 2027년까지 강서구 송정동 부산신항역 인근의 새 보금자리로 이전할 계획이다.

100년 이상 부산 원도심을 지켜온 철도차량정비단은 외곽으로 떠나지만, 이곳은 또다시 부산 100년의 새로운 미래를 잉태할 땅으로 부산시민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오랫동안 많은 시민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이뤄 낸 기회인 만큼 후회 없고 멋진 부산의 신세계가 이곳에서 펼쳐지길 기대한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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