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산미술 제대로 알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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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문화부 공연예술팀장

“작품 진짜 좋네요.” 감탄하는 기자에게 전시를 담당한 학예연구관도 “작품을 꺼내면서 우리끼리도 감탄했어요”라고 답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1960-70년대 부산미술:끝이 없는 시작’전에 전시된 김홍석 작가 작품 앞에서 나눈 대화다. 부산시립미술관 기혜경 관장이 올해 초 인터뷰 때 “70년대 단색화 작가로 포함되어 논의될 수 있는 작가인데도 중앙 화단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캔버스에 질서정연한 바느질로 선을 만들어내고, 자른 실을 길게 뽑아내고, 바늘구멍의 흔적만 남겨진 것 등 김홍석의 작품 ‘개폐’ 시리즈는 듣던 대로 훌륭했다. 부산교대 미술과 교수로 활동했던 김홍석 작가는 50대 후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홍석의 작품 108점을 기증받아 소장하고 있는 시립미술관 측은 어떻게 하면 작가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부산미술 저력’ 느끼는 전시 눈길
탄탄한 작가 연구에는 아카이브가 중요
엑셀 파일 수작업 관리하는 시립미술관
코로나 대응 위해서도 디지털화는 필수

‘끝이 없는 시작’전은 현대미술 정착기 부산의 작가들이 쏟아낸 실험주의 작품을 만나는 자리였다. 지역의 쟁쟁한 선배 작가들의 회화, 조각, 설치 작품에서는 당시의 혈기와 도전 정신이 뿜어져 나왔다. 지난 2월 막을 내린 기획전 ‘오래된 질문’에서 부산미술 1세대 작가를 집중 조명한 것에 이어 ‘부산미술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한 전시였다.

“서울에서 활동하셨더라면 큰 갤러리들이 ‘전시회를 열자’며 일부러 찾아왔을 만한 분이다.” 미술관 관계자가 한 작품을 소개하며 귀띔했다. ‘부산에 괜찮은 작가는 많은데 그 이름이 바깥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앞의 두 전시에서 소개한 원로작가 중에도 그런 분들이 꽤 있었다.

전시와 관련해 미술관 관계자들에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작가 연구’의 중요성이다. 한국 미술계 안에서 맥락화되지 못한 실력있는 부산 작가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탄탄한 작가 연구가 필수적이다. 탄탄한 작가 연구는 풍부한 자료에서 나온다. 작품 스케치, 도록, 전시 포스터, 작가노트, 출품 승낙서, 사진, 친필 편지, 전시 관련 기사와 평론, 인터뷰 영상 등 체계적으로 분석·정리된 자료가 많을수록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연구를 깊이있게 진행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아카이브는 더 좋은 전시와 연구의 밑바탕이 된다. 지역미술사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미술아카이브 구축이 중요한 이유다.

부산미술의 자리매김을 도와줄 미술아카이브 구축은 공공미술관이 맡아줘야 한다. 하지만 부산의 실상은 놀라운 수준이다. 부산시립미술관 미술정보센터에는 총 5만여 점의 자료가 있지만 관리 인력은 단 두 명 뿐이다. 자료는 엑셀 파일로 관리한다. 50년대 자료를 모아서 보고 싶으면 학예사들이 하나하나 수작업을 해야 한다. 자료 내용 확인도 창고에 들어가서 직접 보고 골라서 뽑아낸다. 자료 파일은 미술관 내에서도 외장하드에 넣어서 움직인다고 한다. ‘스마트 도시’를 표방한 부산의 대표 미술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니… 믿기 어렵지만 현실이다.

아카이브를 더 많은 사람이 제대로 쓰려면 디지털화는 필수적이다. 그동안 시립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모델로 하는 소장품·아카이브 시스템 도입을 추진해 왔다. 아카이브 관리 시스템 구축 예산 2억 원을 추경에 올려둔 상태이다. 유실 위기에 놓인 원로작가의 자료 수집, 다른 전시기관의 아카이빙 지원 등 지역 대표 미술관으로 맡아줘야 할 과제는 꿈도 못 꿀 수준이다. 당장 시급한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만 반영한 최소한의 예산이지만 이마저도 똑 부러지는 해법이 나오지 않아서 답답한 실정이다.

제대로 된 소장품·아카이브 시스템은 코로나19와 같은 비상 사태에도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만든다. 평상시에 차곡차곡 쌓아둔 ‘디지털 콘텐츠 총알’이 있어야 뭐라도 해볼 수 있다. 홈페이지도 개선돼야 한다. 실제 코로나 정국이 온 뒤 부산시립미술관이 온라인 콘텐츠를 올리는데 20일 이상이 걸렸다.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수준의 온라인 전시 서비스가 그냥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부산시립미술관의 미술아카이브가 제 기능을 하면 지역 미술 발전과 작가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역 미술의 미술사적 재평가를 이끌어내고, 부산미술이 나아갈 방향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미술의 자리매김, 시민의 문화향유권 확보를 위해서라도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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