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등친 이통사 대상 첫 집단 ‘계약무효’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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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장애인 12명이 이동통신사를 상대로 계약 100건 이상에 대한 계약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6일 오후 부산의 한 통신사 대리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지적장애 2급 최 모(28) 씨는 2016년 7월 길을 지나던 중 부산의 한 KT대리점 직원의 호객행위로 매장을 방문했다. 그는 판매점 직원의 꾐에 넘어가 2018년 1월까지 해당 대리점에서 휴대전화 9대, 태블릿PC 2대, 인터넷과 IPTV 결합상품 등을 개통했다.

지적장애 2급 김 모(63) 씨도 2017년 12월 KT 대리점 직원의 호객행위로 매장에 들어갔다가 휴대전화를 신규 가입했다. 대리점은 김 씨가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 한다는 점을 다시 악용해 “요금제 변경을 해야 하니 빠른 시일 내 대리점에 다시 방문해야 한다. 요금이 적게 나오게 해 주겠다”고 재방문을 유도한 뒤 휴대전화를 또 개통하도록 만들었다. 김 씨는 이곳에서 휴대전화 5대를 개통했다.

KT·LG유플러스 대리점 22곳
지적장애인 12명 ‘속임수’ 계약
“이통사 무분별 영업 근절해야”

지적장애 3급인 박 모(49) 씨는 휴대전화 요금을 문의하러 LG유플러스 대리점을 방문했다가, 대리점 직원이 박 씨에게 요금제 변경 대신 휴대전화를 새로 개통하게 했다. 이어 해당 직원은 요금제를 바꿔야 한다는 이유로 박 씨의 매장 재방문을 권유한 뒤 “요금을 더 적게 나오게 해 주겠다”고 속여 인터넷과 TV 상품을 추가로 가입하게 했다. 박 씨는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LG유플러스 대리점 4곳에서만 휴대전화 4대, 태블릿PC 1대, 인터넷·TV 2회선을 계약했다.

사리분별이 힘든 지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불필요한 휴대전화를 여러 대 개통하게 한 이동통신사 대리점의 도를 넘어선 영업행위에 대해 부산의 장애인 12명이 이들과 체결한 100건 이상의 계약이 무효라며 본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장애인 한두 명이 이와 유사한 소송을 낸 적은 있지만, 10명 이상의 장애인 원고인단이 꾸려진 건 처음이다.

최 씨를 포함한 2·3급 지적장애인, 청각장애인 12명은 지난 10일 부산지방법원에 구현모 ㈜KT 대표이사와 하현희 ㈜LG유플러스 대표이사를 상대로 계약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2016년 7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부산에 있는 KT와 LG유플러스 대리점 22곳에서 불필요한 휴대전화 여러 대를 개통하는 등 문제성 계약 114건을 체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송을 주도한 부산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따르면 소송의 발단이 된 계약 114건은 KT 대리점에서 92건(80.7%), LG유플러스 대리점에서 22건(19.2%)이다. 이 중 KT A대리점에서 체결된 계약이 36건으로 가장 많았고, KT B대리점(14건)이 뒤를 이었다.

원고 측 소송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한올 변현숙 변호사는 “소송을 진행하면 원고인들이 부당하게 내야만 했던 요금과 위약금 등 정확한 피해 액수가 밝혀질 것이다”며 “원고인들은 조만간 해당 대리점을 준사기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T A대리점 관계자는 “현재 일하고 있는 매장 직원들은 5월에 새로 왔다”며 “5월 이전 계약 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 C 대리점 관계자는 “소송을 제기한 고객은 가입 3개월 만에 타사로 번호를 변경한 것이서 문제가 없다”며 “계약 관련 민원이 들어온 것도 없었고, 장애인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부당계약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KT와 LG유플러스는 “대리점을 100% 통제할 수 없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이번 소송에서 업계 1위인 SK텔레콤 대리점 피해 사례가 단 한 곳도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KT 관계자는 “본사가 가두영업을 권장하지는 않지만 실적을 올려야 하는 대리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이상 징후 적발 시스템도 운영 중이고, 문제 발생 대리점은 영업을 할 수 없게끔 코드를 회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석하 기자 hsh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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