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사라진 캠퍼스 낭만에 대한 단상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인혜 배우·경성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컴퓨터에 달린 이쑤시개 둘레만 한 작은 구멍 속 카메라를 바라보며 오늘도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다. 학생들과 소통하는 방법은 세 가지. 교수님들처럼 학생들이 카메라로 자신을 비춰 서로의 모습을 화상으로 보며 대화를 주고받는 방법, 학생들은 마이크를 통해 음성으로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 채팅창에 실시간으로 학생들이 메시지를 남기는 방법이 있다. 예전처럼 반드시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뵙고 학습을 익혀야 하는 게 아니라 TV를 시청하듯이 교수님의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보며 공부하고 소통한다.

강의 도중 교수님께 질문이 있을 때 용기를 내어 손을 번쩍 드는 일이나 주목받는 게 부끄러워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조용히 조언을 구하는 모습은 더 이상 필요 없다. 강의 중에도 언제든지 교수님께 메시지를 보내 수시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학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비공개 1 대 1 대화창도 열 수 있다. 인기 수업 수강 시에 벌어지는 앞자리 눈치 싸움도 이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화상을 통해 맨 앞자리에 앉은 것처럼 집중해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지각하는 일도 거의 없다.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면 바로 강의실 입장이 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세수는 안 한 채 상의만 대충 갈아입고 하의는 잠옷 바지 그대로 수업을 들어도 아무 문제 없다. 집이든 커피숍이든 원하는 장소 어디에서도 수강이 가능하다.

잔디밭서 짜장면 시켜 먹고
1인 3역으로 대리 출석하던
추억들 삼켜버린 코로나19

전염 피하려는 온라인 수업
긍정적인 면 최대한 살려서
새로운 모델 만들 기회 되길


과거 대학 생활의 모습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늦잠 자는 날이면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뻗친 머리에 대충 물만 묻혀 퉁퉁 부은 얼굴로 학교에 헐레벌떡 뛰어갔었다. 학교는 왜 그리 언덕인지. 정문에서 강의실까지 달려가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올라 갈증은 최고조에 이르고 잠은 어느새 깨어있었다. 그러다 출석 체크 이전에 도착하면 로또라도 맞은 듯 운수 좋은 날이라고 행복해하며 모든 갈증이 해소되곤 했다. 출석 체크도 마찬가지이다. 온라인 강의는 호명할 때마다 대답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이 가능하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화면 포커스가 맞춰져 현재 음성을 내는 사람이 누구인지 표시해 주기 때문이다. 더 이상 대리 출석하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필자는 대학 다니던 시절, 대리 출석의 달인으로 불렸다. 학과 동기들이 강의에 늦는 날이면 연기자 실력을 발휘해서 1인 3역으로 대답을 하곤 했다. “이인혜”를 부르면 “네”라고 당당한 목소리로 일단 대답해 놓는다. 그리고 친구 이름을 부를 때마다 다양한 역할로 변신한 듯 목소리를 바꿔가며 “네”라고 대답한다. 어떨 땐 청순가련한 여자가 되어 수줍은 목소리로, 어떨 땐 발랄한 말괄량이가 되어 높은 톤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간혹 눈치챈 교수님 중에는 “학생들끼리 대신 출석도 해주고 의리가 있어야지. 혼자만 살면 되나” 하시면서 슬쩍 넘어가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인혜야, 우리가 대신 출석해 줘야 하는데 어떻게 바쁜 너한테 우리가 오히려 대리 출석을 받냐.” 아직도 그때 친구들을 만나면 추억을 되새기며 깔깔거리곤 한다.

올해 대학 생활을 한껏 기대하며 입학했을 1학년 신입생들에게 지각 경험도, 대리 출석 추억도, 푸른 잔디밭에 앉아 정겹게 짜장면을 시켜 먹는 소소한 기쁨도 안겨줄 수 없음이 선배 입장에서 참으로 안타깝다. 온라인 강의로 만나 대면도 못 한 채 한 학기를 마쳐야 한다는 사실 또한 교수 입장으로서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내가 품고 있는 추억들을 언젠가 후배들이 그대로 누리기를 바라며 마냥 기다리는 건 현명한 생각이 아닌 듯하다. 코로나19 사태로 대학교 강의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된 지 벌써 3개월. 이제는 단기간 대체품으로서의 강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학습 방법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감염병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임시적인 방식을 무기한 사용할 수는 없다.

사실 교수에게 온라인 강의는 쉽지 않다. 학생들의 집중도나 이해도를 즉각적으로 살필 수 없기 때문에 강의실에서 이루지는 수업보다 반응을 더 세밀하게 챙길 수밖에 없다. 일 방향 수업보다 교수와 학생이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는 양 방향 수업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원활한 강의가 이루어진다.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PPT 자료나 동영상 등 풍성한 볼거리를 보다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그동안 보도된 온라인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 조사를 보면 강의 충실도나 소통 만족이 높은 것으로 집계된 경우가 많다. 갑작스럽게 시행된 방식이지만 컴퓨터와 모바일에 능통한 대학생들에게는 어느 정도 합리적인 교육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라고 했던가. 이번 기회로 현재의 젊은이들에게 걸맞은, 또한 교수님들의 고충을 보완할 수 있는, 보다 전문적이고 심화한 교육방식이 개발되길 바라본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