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쏟아지는 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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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의원입법안 발의가 쏟아지고 있다. 개인 전문 분야를 살린 법안에서부터 지역 현안, 코로나·아동학대 등 사회 이슈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16일까지 접수된 것만 595건. 17일 오후 6시 현재에도 29건이나 더해져 총 624건에 이른다. 이 중 정부가 제출한 예·결산안이나 승인(동의)안을 제하더라도 의원입법 법률안만 568건에 달한다. 지난달 30일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개시되고, 다음 날 제1호 법안(의안번호 2100001)으로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 등 16인이 공동 발의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 이후 하루에 30여 건이 쏟아진 셈이다.

하긴, 국회의원 숫자가 300명이고,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입법기관’임을 감안하면 보름여 만에 600건이란 숫자가 많은 게 아닐 수 있다. 국회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광범위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 하는 정부 입법과 달리 의원입법은 발의자를 포함해 10인 이상 찬성이면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 전체 의원 176명이 참여하는 단체 텔레그램 방에선 한 의원이 법안 요지서를 띄우고 그에 동의하는 동료 의원 10명을 모아서 법안을 발의하기까지 1시간이면 뚝딱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법안이 발의된다고 모두 통과되는 것도 아니다. 20대 국회 본회의 법안 통과율은 36.5%에 그쳤다. 문제는 양에만 치중하다 법안의 질을 소홀히 할까 봐 우려된다는 점이다. 실적 쌓기용 ‘졸속 입법’ 논란이다. 졸속 입법안은 발의된 그 자체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야기한다. 때론 특수 이익집단의 이익을 옹호하는 규제 법안이나 분쟁을 야기하는 부실 법안을 걸러내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 무엇보다 발의한 법안이 폭증하다 보면 정작 중요 법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심사가 어려울 수 있다. 쏟아지는 법안이 곱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국회 개원 초기 재탕, 삼탕 법안 발의가 높다고 한다. 지난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을 짜깁기 또는 일부 수정해 재발의 하는 경우다. 물론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해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단적인 예로 ‘스토킹 범죄 처벌법’은 21년 전인 15대 국회를 시작으로 이번 21대에 다시 발의된 ‘육’ 탕 법안이다.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의미다. 이젠, 양보다 질, 의원입법에 대한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국회의원들 또한 입법 활동 그 자체가 국민에겐 참으로 절박한 삶의 문제라는 걸 명심하기 바란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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