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승-전-공항’ 이젠 앞으로 나아갈 때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최세헌 사회부 행정팀장

또 공항이다. 국무총리실 검증위원회의 김해신공항 적정성 평가 결과 발표가 임박해지면서 김해신공항 관련 기사는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 2002년 중국 민항기의 김해 돗대산 충돌사고 후 제기된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 문제는 거의 20년 가까이 지역 최대 현안이 되고 있으니, 부산 시민들 입장에서는 피로감도 드는 건 사실이다. ‘또’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피로감의 반영이기도 하다.

20년 가까이 부산 지역 최대 현안으로
피로감 속 정책의 ‘블랙홀’로 발목 잡아
월드엑스포 유치 등 굵직한 변수 등장
잘못된 것 바로 잡는 ‘망양보뢰’ 행정 필요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문제이기에 ‘또’ 공항 얘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은 ‘부산의 미래와 생존’이 걸린 일이라고 많이 회자하는데, 이는 결코 과장은 아니다.

일반 시민들 처지에선 미국,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을 타기 위해 멀리 인천공항까지 가야 하는 ‘여객’의 차원에서 불편함만을 느끼겠지만, 물류·관광 등 산업이라는 차원에선 사실 부산 경제가 살아나느냐 마느냐가 달린 문제다.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국가적 사업이기도 한 ‘2030 부산 월드엑스포’ 유치는 부산의 도시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레벨 업 시킬 수 있는 기회다. 정부 입장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국가 전 분야에서 일대 혁신을 가져오고 국가경쟁력 높여 우리나라의 재도약을 위한 대전환점으로 삼는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생산유발 효과 약 43조 원, 부가가치유발 효과 약 18조 원, 고용창출 효과 약 50만 명이 예상되는 월드엑스포 유치의 전제 조건은 단연코 동남권 관문공항의 존재다.

기존의 김해공항이나 정부(국토교통부)의 김해신공항 안으로는 전 세계 200개 국에서 연 인원 약 5000만 명이 찾는 월드엑스포를 도저히 열 수가 없다. 수용 규모에서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또 24시간 운영되지 않는 것도 큰 핸디캡이고, V자형 활주로의 위험성도 해외 관광객이 찾기에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동안 많이 거론돼 왔던 안전 문제를 놓고 본다면, 여러 차례 설문조사에서도 나오듯이 국내외 항공기 조종사들이 가장 위험을 느끼는 공항으로 김해공항이 항상 손꼽혀왔다. 김해공항은 안전 문제로 외국항공사가 기피하는 공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불명예’는 정부의 김해신공항 안에서도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V자형 활주로의 사고 위험성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해서는 2022년 3월 유치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교통대책 마련 차원에서 이때까지는 김해신공항 안의 백지화뿐만 아니라 동남권 관문공항의 대체입지 선정이 필요하다.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 추진이 속도감 있게 진행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정부의 김해신공항 안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국가의 대전환점이 될 월드엑스포 유치는 공항의 안전·규모 등 측면에서 봤을 때 사실상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의 김해신공항 기본계획은 지난 2018년 9월 용역 중간보고회 때 거의 확정됐다. 그 후 채 2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상황은 많이 변했다. 월드엑스포 유치라는 국가적 사업은 물론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 결정 등의 굵직한 변수가 생겼다. 월드엑스포 유치는 미래 항공수요라는 측면에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 결정은 지역 갈등의 해소라는 측면에서 2년이라는 시간에 비해 엄청난 변화인 셈이다.

국토부라는 중앙 부처에서 한번 결정한 정책을 2년 만에 뒤집는다는 것은 중앙 부처 입장에서는 사실 큰 부담일 수 있다. 특히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국토교통부 등 이른바 ‘관피아’라고도 불리는 힘 있는 부처 관료들이 결정한 사항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정권의 입장에서도 첫 단추를 잘못 꿴 데서 오는 부담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중국 전한시대 학자 유향이 편찬한 전국책에 ‘망양보뢰’(亡羊補牢)라는 말이 있다. 양을 잃으면 우리를 고치라는 의미다.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방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잘못된 것을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음을 알고도 그냥 밀어붙인다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를 때다.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언제까지 ‘또’ 공항 얘기만을 되풀이할 것인가. ‘기-승-전-공항’으로 귀결된다. 공항 문제는 부산 정책의 블랙홀이 됐다. 공항 문제에 발목이 잡혀 부산의 발전은 더디고 또 더딜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나아갈 시간도 부족한 판에 부산은 20년째 공항 타령만 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종지부를 찍을 때다.

corni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