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흑인 민권운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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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덕 소설가

오늘날 미국의 성장과 번영은 인종차별이라는 오욕의 전통 위에서 발판을 마련했다. 건국 이후 미국의 법률과 제도는 이른바 와스프(WASP)라고 불리는 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의 자유와 권리만을 보장했다. 특히 백인이라는 인종성이 중요했는데, 1790년의 ‘귀화법’은 같은 이민자라고 할지라도 오직 백인 자유인만이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외국인 토지법’은 아시아계 이민자의 토지 및 소유권을 금지했고, ‘잡혼 금지법’은 백인과 타인종의 결혼을 금지했다.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1952년 ‘맥카렌 월트법’ 이후에야 비로소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196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쓴 흑인 민권운동은 흑인뿐만 아니라 다른 유색인들의 지위 향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주도 하에 일궈낸 1964년의 민권법은 흑백분리정책을 연방법으로 금지했고, 이듬해 1965년의 투표권리법은 소득세나 문해력 테스트 등을 이유로 흑인의 투표권을 박탈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로써 오랜 세월 동안 남부 흑인들을 차별하던 인종 분리정책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철폐되었다.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 확산
아시아인 차별 완화에도 기여

미국 사회 기준은 백인 vs 비백인
유색 인종에겐 차별 늘 따라다녀

동양인에 대한 비하도 아주 심해
차별과 배제, 반드시 뿌리 뽑아야


1960년대의 흑인 민권운동은 아시아인 차별 정책을 완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로 1965년에 개정된 이민법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로 인해 아시아 국가에만 적용되던 이민 할당제가 폐지되었고, 가족 초청이 가능해져서 미국 내 한인 사회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즉 1965년의 이민법 개정은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이 가져온 직접적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이후의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는 보다 교묘하고 체계적으로 일상 속에 뿌리내렸다. 모든 흑인 남성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되었고, 아시아인들은 온순하고 복종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져서 ‘찰리’라고 불렸다. 소수자들끼리의 경쟁과 시기심을 부추기기도 했는데, 경제적으로 성공한 아시아인들을 가리켜 ‘모범 소수민족’(model minority)이라고 불렀다. 똑같이 힘든 조건 속에서도 성공한 이 동양인들을 보라, 하고 말함으로써 흑인을 포함한 다른 유색인들을 질타하며 인종차별에 기반을 둔 미국 사회의 폐해를 가렸다.

강용흘의 <동양인 서양에 가다>(1937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계 미국소설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주제는 인종차별 경험으로 인한 상처와 정체성의 혼란이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완벽한 영어를 구사한다 해도 한국계 후손들은 항상 “어느 나라에서 왔죠?”하고 질문을 받는다. 백인/비백인을 구분하는 인종성은 지금도 미국 사회의 내부자와 외부자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지난 2001년에 발간된 돈 리의 소설집 <옐로>에는 인종차별로 인해 신경증과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등장한다. ‘옐로’는 미국에서 동양인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멸칭이다.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이중의식과 분열증은 백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흑인들의 심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자신을 항상 타자(백인)의 눈을 통해 판단하는 이중의식, 그리고 ‘백인이 되고 싶다’는 좌절된 욕망으로 인해 스스로를 비하하는 분열증은 일찍이 두 보이스와 프란츠 파농이 흑인들의 심리를 설명하기 위해 각각 사용한 용어이다. 인종차별은 백인을 제외한 모든 인종을 향해 다양한 양상으로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전 세계에 알린 흑인 소녀 다넬라 프레이저는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가 동네에서 “은밀하게 너무 많이 일어난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에서 반복되어 발생하는 인종차별에 의한 죽음은 단지 흑인들만의 비극이 아니다. 인종에 근거한 차별과 배제는 반드시 뿌리 뽑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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