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예타 면제’는 이럴 때 쓰는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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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수도권에 이어 대전에서도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비수도권으로 점점 남하해서 재확산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코로나19의 재유행, 심지어 장기간 유행할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상황이 여전히 심각하니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킨 결정은 잘한 일이다. 독립 조직이 되면 별도의 예산과 인사권을 가지게 된다. 부족한 의료 전문 인력을 확충하기가 보다 쉬워질 것이다.

그런데 질병관리청 승격에 대해 환영해야 할 일선 보건소에서 뜻밖에도 “병목이 더 심해지겠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중앙 조직에는 신경을 쓰면서, 정작 일이 몰리는 지역의 보건소 인력 확충 대책이 없어서 나오는 이야기다. 부산 16개 구·군 보건소에 정규직 의사는 9명뿐이고 인력 절반이 계약직이나 기간제라고 한다. 그래서야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제대로 일하기가 어렵다. 감염병 관리에서 중앙과 지방의 역할은 엄연히 구분된다. 부산에서 병원 코호트 격리가 있었을 때 중앙에서 온 인력이 지역의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질병관리청보다 더 센 조직이 되더라도 지역에서 발생한 감염병 환자를 모두 책임질 수는 없다. 지역의 환자는 지역사회가 책임을 져야 하기에 질병관리청과 함께 지방 조직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질병관리청 승격에 보건소는 걱정
인력난 지방 조직 강화 대책 나와야
부산 공공병원 비중 전국 평균 절반
서부산의료원·침례병원 확충 절실
지역에 필수적인 공공의료기관에
경제적 타당성 잣대 들이대면 안 돼

부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공공병원 확충이다. 부산의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2.5%로 전국 평균 5.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부산시는 부산보훈병원을 감염병원으로 쓰려고 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보훈대상자를 퇴원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부산대학병원의 운영 주체는 교육부와 부산대다. 부산보훈병원은 국가보훈처,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각각 다르다. 공공병원이라고 해도 운용 주체와 목적이 다르니 부산시나 보건복지부의 뜻대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부산시가 운영하는 부산의료원만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쓸 수 있다. 그 때문에 부산의료원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환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느닷없이 부산의료원에서 나왔던 기초생활수급자 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숨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시는 서부산의료원과 폐원된 침례병원을 각각 서부산과 동부산지역 공공의료의 거점으로 삼을 계획이지만 예비타당성조사(예타)가 걸림돌이다. 서부산의료원과 침례병원에는 각각 2000억 원 이상이 소요된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 국가 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이면 예타 대상이다. 하지만 취약계층의 진료를 떠맡은 공공병원은 적자 운영이 일반적이어서 예타 통과가 어렵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운영된 부산의료원도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여가고 있다. 코로나 시대 공공병원에 경제적 타당성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그동안 예타 면제가 된 사업을 살펴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예타 면제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1월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라며 사업비가 24조 1000억 원에 달하는 전국 17개 시·도 23개 사업의 예타를 풀었다.

국가 안보에 관계되거나 재난 복구 지원 등의 문제로 시급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은 예타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감염병 대응이 ‘제2의 국방’이라는 인식으로 대응 체계를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코로나와 싸우는 공공병원이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가. 공공도서관에게 돈 벌라고 하지 않듯이, 공공병원에도 수익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돈은 안 되지만 꼭 필요한 진료과도 운영할 수 있다.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는 예산 낭비가 아니라 감염병 대응과 경제위기 극복, 사회재난 극복을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대책임이 확인된 만큼 공공의료 예산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과감하고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가 침례병원 공공병원화 추진을 위해 예타 면제를 촉구하며 한 말이다.

부산시의회는 지방의료원 설립 예타 면제 결의안을 채택했다.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영남권간담회에서 이낙연 위원장에게 공공의료기관 예타 면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명분이 확실하고, 취지에 부합하고, 민의가 모인 일이다. 부산시 방역관 안병선 건강정책과장은 “공공의료란 지역에서 필수적인, 하지만 충족되지 않는 의료를 담당해야 하는 중심이다. 질병관리본부 조직 확대 못지않게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감염병 대응 조직을 격상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라는 큰불을 진화하려면 공공병원이 필요하다. 소방서 짓는데 예타를 하지 않듯이, 공공병원에는 예타 면제를 해줘야 한다.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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