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영욕의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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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1998년 6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500마리를 트럭에 나눠 싣고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향했던 모습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다. 긴장과 대치의 현장을 줄지어 통과하는 소 떼 행렬은 평화로운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를 품게 했다. 그해 11월 관광객을 실은 배가 금강산을 향해 뜨고, 2년 뒤인 2000년 6월 분단 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북한과 현대아산이 ‘공업지구개발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2000년 8월)하면서 개성공단 개발사업이 시작된다. 그러니 올해 8월이면 개성공단이 잉태된 지 20년이 되는 셈이다. 동포애에 기반한 기부와 민족 교류를 위한 관광 사업이 양측의 장점을 살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경제협력사업으로 발전한 것이다. 특히 북측이 군사 요충으로 중시하는 개성에 남북협력 공단을 만든 결정은 마치 ‘칼을 쳐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 낫을 만든’다는 성경 구절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201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를 인용해 “개성공단이 정상 가동되고, 2단계 확장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47년까지 30년간 우리나라의 누적 경제성장 효과가 미화 14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떠돌던 남쪽 제조업 기반을 개성공단에 모으면서 신발, 섬유 등 중소기업들의 숨통이 실제 트였었다. 2013년 1월 총생산액 20억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시 군사적 긴장이 응축되면서 2013년 4월 북측 근로자들이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는 곡절을 겪었고,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를 구성하면서 5개월 만에 재가동에 들어갔다. 또다시 북측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남측 정부가 2016년 2월 개성공단 전격 중단을 선언했다. 장기간 국제 제재로 인한 경제 침체에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친 북측에서 남북연락사무소를 와르르 무너뜨리는 연출을 하더니 이제 개성공단에 군부대를 주둔시키겠다는 발표까지 나왔다.

개성은 글로벌 문화강국 고려의 수도였고, 조선 송상의 고장이다. 보습을 녹여 다시 칼로 만드는 퇴보를 지켜보는 한민족의 안타까움은 이를 데 없다. 첫 남북정상회담의 주인공이었던 김 전 대통령이 한 말처럼 ‘상인의 현실 감각’으로 냉정을 되찾고, 평화를 되살릴 방안을 고민할 때다. 이호진 해양수산부장 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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