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원의 날, 선원을 모르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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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길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

6월 25일은 ‘선원의 날’이다. 무엇보다 먼저, 코로나19 최전선에서 해상 운송에 만전을 기하는 선원들에 대한 감사와 동시에, 세계 주요 항만의 통제로 승·하선 교대가 막혀 1년이 넘는 ‘초장기 승선’으로 힘들어하는 우리 선원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전한다.

이날은 국제해사기구(IMO)가 2010년 선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선원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올해로 10주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우리 선원들은 이날을 축하하고 기뻐할 수 없어 참으로 안타깝다. 이유는 이날이 동족상잔 비극인 6·25 전쟁 발발일과 겹치기 때문이다. 지울 수 없는 아픔과 멈출 수 없는 슬픔이 올해로 70년째 이어지고 있다. 민족의 비통함이 온 나라를 뒤덮는 날에 우리 노고를 알아 달라, 우리를 기억해 달라며 나설 수 없는 현실을 잘 알기에 우리 선원들은 조용히 마음속으로 25일을 지낸다. 게다가 최근엔 문재인 정부 들어 상당히 진전된 남북관계가 일순간 악화됐다. 다시 남북이 대결의 길로 들어설까 심히 우려스럽고, 어쩔 수 없이 올해 선원의 날은 예년보다 더 없는 듯하다.

아예 없으면 모를까 굳이 왜 이날로 정했을까?

IMO는 2010년 6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선원의 훈련·자격증명 및 당직근무 기준에 관한 국제협약(STCW)’과 코드 개정 회의를 열고, 여러 안건을 논의하며 그해를 ‘세계 선원의 해’로 선포했다. 또 매년 6월 25일을 인류의 풍요로운 삶과 세계 경제를 위해 고독한 승선생활을 견디며 선박에서 근무하는 선원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의미를 담아 기념하자는 취지로 ‘선원의 날’로 정했다.

유명무실에 가까운 IMO 선원의 날을 우리 실정에 맞게 새로운 날로 지정하려는 노력은 5년 전부터 선원노련 주도로 진행돼 왔다. 그러나 선원의 날 제정안은 ‘역대 최악의 20대 국회’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더구나 선원의 날은 IMO 주도로 제정되며, 상선 선원에 국한된 면이 있다. 같은 선원이지만 어선 선원은 수산인의 날을 기념하는 경향이 있다. 공교롭게도 수산인의 날은 만우절인 4월 1일이며, 수협 창립일이다. 해양수산부 차원에서 가장 큰 기념일이라면 5월 31일 바다의 날을 꼽는다. ‘해상왕’ 장보고가 완도에 해군·무역기지인 청해진을 설치한 5월을 기념하는 것이다. 지구에 바다가 크게 하나이듯, 상선과 어선으로 갈라놓지 말고 한배를 탄 사람들이 하루라도 대동세상이 되는 그런 날을 꿈꿔 본다.

선원의 날 제정이 쉽진 않겠지만 못할 것도 없다. 선원 관련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 문성혁 장관이 현대상선 일등 항해사 출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친동생이 현직 선장이다. ‘세계 해양 대통령’이라 불리는 IMO 임기택 총장도 대한민국 마도로스 출신이다. 다들 본인이 선원 출신이거나, 선원과 가장 밀접한 정책 결정권자로 현직에 있다. 앞에서 끌어주고, 선원노련과 선원 유관 단체가 뒤에서 힘을 보탠다면, 능히 우리가 바라는 선원의 날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이번 국회에 국가 안보와 기간산업인 해운수산업 최일선에 있는 선원을 아는 국회의원이 있는지 의문이다. 21대 국회는 개원부터 말썽이다. 겨우 문을 연 국회에서 선원 관련 상임위 등 곳곳에서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선원들은 여전히 기뻐할 수 없는 날을 또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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