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그리운 청진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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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내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성식 시인이 그리워한 청진항은 나의 청진항이기도 하니까. 김성식은 한국해양대학교를 나와서 30여 년 선상 생활을 하면서 해양시(maritime poem)를 썼다. 1970년 말 선상에서 투고한 작품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는데 그게 “배를 타다 싫증 나면 까짓것 청진항 도선사가 되는 거야”로 시작하고 끝나는 ‘청진항’이다. 그는 끝내 청진항의 도선사가 되지 못했을뿐더러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또 다른 고향이 된 부산에서 영면하였다. 함경남도 이원이 그의 고향이다. 평생 오대양을 항해하면서 두고 온 고향을 마음에 품었다. 그만큼 근대세계와 고향 사이에서 찢긴 존재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1942년생인 김성식은 2002년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다. 서울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온 뒤에 평생 부산을 벗어나 산 적이 없다. 하지만 세계의 항구도시를 오가면서 이국의 도회와 배 위에서 보낸 나날들이 부산에서 지낸 시간보다 더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식민지 반도에서 태어나 분단으로 섬이 된 나라에서 성장하여 대양으로 눈길을 돌리고 해양 경제의 주역으로 살다 갔다. 김성식의 생애는 충분히 애국적이다. 돌이켜 볼 때 우리에게 해방은 해양의 해방이었다. 제국의 바다에 갇혀 있던 한반도가 해양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에서 이러한 해방을 실천한 장소(topos)가 부산이다. 비록 일본 제국이 만든 식민도시로부터 성장하였지만 부산, 구체적으로 해항도시(seaport city) 부산이 없었다면 한국의 근대화도 경제 성장도 힘들거나 더뎠을 게 틀림이 없다. 그만큼 부산은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놓인 도시였는데 수많은 김성식들이 일궜다.


수많은 김성식들이 일군 부산
남북분단으로 섬이 된 나라를
해양 해방으로 이끈 항구 도시

이제 새로운 부흥을 찾기 위해
백석 시인의 북방으로 향하려면
모든 해역에 열린 도시 상상해야



서구에서 근대는 지중해에서 벗어나면서 시작한다. 대양(ocean)에 대한 열기가 고조된 16세기 이래로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으로 ‘대양적 전환’이 이루어진다. 칼 슈미트는 지중해를 연안의 범주에 둔다. 한국이 대양적 전환을 이룬 시기는 언제일까. 아시아 지중해가 제국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고 대양으로 가는 문이 차단당하였으니, 해방 전은 아니다. 1950년대 후반 원양어선이 출항하고 1960년대 상선이 부산항을 왕래하면서 수입과 수출을 주도하면서 시작한다. 이처럼 한국이 대양으로 나가려는 열망이 커진 때에 김성식이 있고 그의 해양문학이 있다. 문학이든 문화든 경제적인 고조기에 발흥한다. 이 시기에 경험적인 개인주의와 사실주의가 결합한다. 고향과 근대 사이에서 그는 항해를 통하여 찢어진 마음을 달래었다.

근대는 국민(nation)-국가(state)를 형성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발전시켜 왔다. 혹자는 우리가 근대 이후에 있다고 하지만 민족과 국민이 분열하고 갈등하는 국가의 상태(state)에서 아직 뜨거운 근대의 길목에 있을 뿐이다. 여전히 원산과 함흥과 청진은 민족을 상상하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눈이 푹푹 내리는’ 백석 시인의 북방으로 가는 길은 닫혀 있다. 이는 우리 부산에 있어서도 답답한 현실이다. 그동안 귀에 익은 ‘평화경제’의 가능성이 실현되고 있지 못하다. 캄차카반도에서 일본 열도를 지나 남중국해에 이르는 동아시아 지중해의 결절지가 부산이다. 러시아와 일본으로 가는 항로가 북한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부산의 부흥을 생각한다면 한시바삐 복원되어야 할 항로이다.

북한 핵으로 인한 제재 국면에서 정부도 북방의 한계를 남방을 통하여 해결하려는 태도 전환을 드러낸다. 남아시아에 이르는 아시아 지중해로 권역을 넓히고자 하며 나아가서 인도양에 다다르려 한다. 소위 말하는 남방정책이다. 분단체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남방을 횡단하는 출구를 만들고 있다. 자연스럽게 북방을 향하던 의욕이 줄어든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의 교착이 돌출하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주위의 4강과 균형을 유지하면서 아시아 지중해를 건너 대양으로 항진하려는 한국의 꿈은 늘 아슬아슬하다. 아시아 지중해를 넘어서 대양과 접속하는 일이 힘에 부친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의 출발이 분단체제의 해소에 있음을 안다. 민족을 뭉개고 국민으로 살 수 없다는 우리의 운명을 말이다.

분단체제는 남북한 모두 미래로 나아가는 데 장애이다. 서로 화해하고 공존할 때 북방이든 남방이든 번영의 길이 열린다. 부산은 북방과 남방으로 가는 교역과 교류의 중심이다. 스스로 더 많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야 하겠지만 국가로부터 위임받는 권한도 획기적으로 커져야만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열린 도시를 만들어 가는 공간정책이 요청된다. 부산 중심의 로컬리즘이나 일국적 시야에 갇히지 않고 해역으로 열린 도시를 상상하자. 북항이든 도심이든 아시아와 세계가 호흡하는 문화를 가꾸자. 부산으로 오간 사람과 선박, 상품과 문물을 기억하자. 김성식이 그리던 고향이 우리의 꿈속으로 들어오게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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