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구조’ 안도의 한숨 뒤엔 ‘수천만 원 치료비’ 막막한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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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부산 수영구 불법 고양이 사육장에서 구조된 고양이.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제공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 구조를 안 할 수는 없잖아요…. 동물보호단체의 숙명이라기엔 너무 잔인한 현실입니다.”

올해 1월 출범한 부산의 동물보호단체 라이프(LIFE) 심인섭 대표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라이프는 올해 2월 부산 수영구, 올해 5월 경남 김해시 대동면의 불법 고양이 사육장에서 고양이 37마리를 구조했다. 불법 사육장에는 고양이들이 좁고 지저분한 철창 안에 갇혀 있었다. 몇몇 새끼 고양이는 죽은 채로 발견됐고, 살아 있는 고양이는 대부분 심각한 저체중과 영양불균형 상태를 보였다. 귀진드기나 곰팡이성 피부염, 중증 폐렴 등 긴급 치료가 필요한 동물도 수십 마리에 달했다.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재정난’
치료비·인건비 쌓이고 있지만
보호소 보내자니 안락사 걱정
코로나로 후원 침체돼 이중고

구조가 끝이 아니었다. 지자체는 구조한 고양이들을 유기동물 보호센터로 보냈다. 단체가 어렵게 구조했지만 10일 안에 입양자를 찾지 못할 경우에는 안락사 처분이 가능해지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유기동물보호소는 말 그대로 ‘보호’를 하는 곳이지, ‘치료’를 주로 하는 곳이 아니었다. 염증 탓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고양이들을 비싼 치료비까지 감수해 가며 입양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터. 심 대표는 유기동물 보호센터로 보내진 고양이들을 사무실로 데려왔다.

이내 심 대표의 손에는 수천만 원의 병원비 영수증이 쥐였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데다, 대부분 고양이가 장기간 입원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병원비 부담은 더욱 컸다. 실제 수영구에서 구조한 고양이 8마리를 한 달 동안 입원 치료시키는 데만 2400만 원가량이 나왔다. 지난달 김해에서 구조한 고양이는 상태가 더 나빠 앞으로 내야 할 병원비가 더 막막한 실정이다. 현재도 15마리가 입원해 있다. 퇴원한 동물들을 사무실에서 돌보는 일도 만만치 않다. 휴일에도 고양이들을 혼자 둘 수는 없으니, 아르바이트까지 써서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치료비부터 인건비까지 엄청나지요. 집은 원래 없고, 한 대 남은 차라도 팔아야 할까 봐요.” 심 대표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들 단체는 구조에 그치지 않고 법 개정을 위한 움직임도 이어가고 있다. 라이프는 불법 사육장 근절을 위해 동물생산업에 ‘생산업 이력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동물생산업 허가 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하고, 이력제를 통해 동물의 종과 수, 임신과 출산 횟수, 태어난 새끼들의 숫자, 경매장과 판매점 정보는 물론 최종 입양처까지 모두 관리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인 만큼, 심 대표의 어깨도 무겁다. 하지만 지자체의 지원 없이 순수 후원금만으로 운영되다 보니, 살림살이마저 팍팍한 실정이다. 신생 단체라 후원자도 100여 명에 그치는 데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법인 후원마저 침체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의혹 등으로 후원금 기부 움직임마저 축소된 것도 걱정이다. “구조한 고양이들을 치료해 좋은 가족을 만나도록 하고, 다시는 이런 동물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예요. 생명을 지키는 일에 많은 분이 힘을 모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심 대표의 마지막 바람이다.

서유리 기자 y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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