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단정 짓지 말아야… 억울한 죽음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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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래 울산경찰청 특채1호 검시관

“시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뉴욕 검시관의 하루> 중에서)

죽은 자의 마지막 권리를 회복하는 사람. 바로 ‘사후 인권 지킴이’ 검시조사관이다. 울산경찰청 과학수사계(KCSI) 김기래(46) 검시관도 날마다 참혹한 시신과 마주해야 한다. 그저 억울한 죽음이 없길 바라며. 그는 울산경찰청 ‘특채 1호’ 검시관이자 14년 차 베테랑이다. 간호사로 10여 년 일한 뒤 경찰로 적을 옮겼다.

간호사에서 전직, 4000구 감정
굵직한 사건·사고 현장 도맡아
"인간 존엄성 지키는 일에 보람"

울산청 과학수사계에서 김 검시관을 만났다. 아담한 키와 밝은 인상이 보는 이를 편하게 만들었다. 평소 사건 현장의 억울한 죽음과 유족의 아픔도 보듬어야 하기 때문일 테다.

검시관은 한마디로 사람이 왜 죽었는지 밝혀내는 최일선 감정사다. 병사인지, 타살인지, 질식사인지, 감전사인지, 중독사인지…. 죽음의 종류와 원인을 알아낸다. ‘의문이 있는 죽음’의 얽히고설킨 사인을 풀 단서를 제공한다. ‘쉽게 단정 짓지 마라’가 김 검시관의 제1원칙이다.

김 검시관이 지금까지 감정(鑑定)한 시신은 3500~4000구에 달한다. 2012년 울산 자매살인 사건, 2016년 관광버스 화재 참사 등 울산지역의 굵직한 사건·사고 현장 가운데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2013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울산 아동학대 살인 사건은 유독 김 검시관 가슴에 커다란 생채기로 남았다. 자신 또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여서다. “현장을 보자마자 경험상 학대라는 직감이 왔어요. 계모는 ‘부엌에서 요리하던 중 욕조에 빠진 아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다 갈비뼈 등이 부러진 것 같다’고 했지만, 부러진 뼈의 개수, 폐의 기흉 등을 볼 때 거짓말이 분명했죠.” 당시 경찰 수사 과정에서 계모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가짜로 요리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끔찍한 사건 현장은 한 장의 선명한 사진처럼 뇌리에 박히기 일쑤다.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감내할 뿐이다. “동료 중에는 ‘집에 가면 장모님이 소금부터 들고 계신다’거나, ‘특정 색깔 티셔츠만 입으면 변사체가 발생한다’며 멀쩡한 옷을 버리는 검시관도 있어요. 저는 스트레스를 받을 땐…. 그냥 쇼핑 정도? 제가 사실 술을 한 잔도 못 하거든요.(웃음)”

그는 ‘천생 검시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 검시관은 “간혹 학생 대상 직업 특강을 나가면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로봇이 대체하기 힘든 직업’이라고 자주 얘기한다”며 “인간 존엄성과 직결된 일이라서 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김 검시관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울산이 산업도시인 점을 감안, 불의의 사고로 숨진 근로자에 대한 검시 매뉴얼을 보강하고 싶다”며 “여력이 된다면 산재사고 예방에 도움 되는 일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에게 여담으로 인기 미국드라마 CSI 시리즈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CSI 드라마 덕분에 엄마를 꽤나 자랑스러워해요. ‘미드’가 참 고맙지요. 근데 저는 잘 보지 않아요. 50분만에 극적으로 해결되는 사건이 어딨겠어요?”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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