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 - 사랑 / 차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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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먹이로 쫓던 새를 찾아가

그 새의 눈물을 빨아먹어야만 살아남는 나방이 있다.

천적의 맥박 소리에 맞춘 날갯짓으로

잠든 눈까풀을 젖히는 정지된 속도로

천적의 눈물샘에 긴 주둥이 밀어 넣을 수 있었던

진화는 천적의 눈 깜박이는 찰나에 있다.

천적의 눈물에 침전된 염기를 걸러

제 정낭을 채운다는 미기록종 나방이여

상사 빛 날개를 삼켜 다시 염낭을 채워야 하는 새여

날개로 비행 궤적을 지우는 고요의 동족이여

제 감정에 마음 찔려본 자만 볼 수 있는 궤적은

내가 가위눌린 몸짓으로 썼던 미기록종의 자음들

나여, 불면이 네 눈으로 날아와 살아남으려 함은

이미 제 영혼인 울음을 간수할 유일책이기 때문

나여, 새의 부리를 조용히 열고

울음통 속으로 들어가 보아라.

차마 소리로 뱉지 못할 자음이 있어

모음만으로 울며 날아가는 궤적을 읽어보아라.

-차주일 시집 중에서-


모음만으로 운다면 비명이나 흐느낌 아닐까. 나이 사십에 혼자 된 윗집 여인의 울음소리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들은 경험이 있다. 죽은 자는 미기록종 나방처럼 살아남은 자의 눈물을 오랫동안 빨아먹는다는 것을 그때 등 뒤로 읽었다. 부재하지만 존재하고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것은 마음이 어찌할 수 없는 죽은 자의 궤적이리라. 미움도 증오도 그리움으로 진화한다는 말은 듣는이를 더 애잔하게 만들었다. 진화의 배후에는 천적이 있다. 먹고 먹히는 천적이 공존하고 있어 꾹꾹 자음을 삼키게 하는 울음이여. 조용히 ‘나여’라고 불러본다. 김종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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